이 년 동안 휴직하고 복직하여 일 년을 일했지만 극한 대상포진을 앓고 건강은 다시 바닥을 쳤다. 한 번 더 쉬었다. 중도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만다는 무력감.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며 일 년 뒤에 다시 복귀했고 첫 해는 아주 잘 보내어 안심이었건만 이태째가 되는 올해, 또 병가를 내게 되었다. 이러다 나를 믿을 수없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이 가쁘게 몰려왔다. 숨이 차 온다.
절망만이 덩그러니 드러누웠다 할 정도로 병실에서 내 존재는 없었건만 스님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번아웃으로 긴 휴직을 하였을 때 스님의 수필로 인해 얼마나 힘을 얻었던가. '스스로 행복하라'시던향기로운 글. 동안 잊고 있던 아련함이 피어올랐다. 그것을 그리움이라 하여도 맞을 터이다. 바라보고 싶고 마음 두고 싶은 곳에 대한 그리움.
'진짜 나를 찾아라'. 진짜 나...
여전히 스님의 책은 먹빛의 농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색이 걷힌 이 글 속으로 들어가면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내 속의 번다한 색을 지우고 나도 이렇게 담담한 정수로 빚어진 먹빛이 될 수 있을까.
목차를 펼치니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소제목이 눈에 든다.
-텅 빈 공간에 홀로 앉아 있으라. 153.
https://pin.it/2dw6oQVxN
"어떤 것이 가장 기특한 일입니까?"
"대웅봉(백장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가서 홀로 앉아 있는 것이 가장 기특한 일이다."
한 제자가 중국 백장회해 선사께 여쭈었을 때 스승의 답을 인용하고 스님은 이렇게 풀어내셨다.
명산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혼자 앉아 있는다고 이것이 기특한 일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의 참뜻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한 남편으로서, 한 아내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기특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여기저기 팔리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우뚝 앉아 있는 것, 당당하게 앉아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기특한 일이라는 거예요. 본래 자기와 마주 서라, 자기 실상을 들여다 보라는 거예요.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느끼라는 것입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모자람이 아니라충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구절을 읽는데 여태까지 죽니사니하던 내 고뇌라는 것이 '잡념'이었구나라는 생각에 소스라쳤다. '자기 자리'라는 개념은 동안 내 속에서만 매몰되어 관계를 놓쳤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사람은 본래부터 사람인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고 친절과 사랑 안에서 그것이 실천된다.'라고 하시는 말씀. 병가 동안의 내 속 고뇌에서 벗어나 관계 속의 내 자리를 보게 하시는데, 이러한 마음이 회복될 때 건강한 인간이 되는 것이구나 하는 통찰을 얻는다.
살펴보면 나는/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나의 아들의 아버지고/나의 형의 동생이고.../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아버지고 /동생이고.../선생이고/납세자고/예비군이고....오직 하나뿐인/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나는/무엇인가/그리고/지금 여기 있는/나는 /누구인가
-김광규, '나' 중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재미나기도, 집요하기도, 철학적이기도 하던 시인의 고찰이 떠오른다. 스님은 관계 속의 나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리도 말씀하셨다. 시인이 말하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가 그와 통할 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기초로서 나이면서 또한 홀로 되어 자신을 수양할 수 있는 나. 이를 담담히 아우르는 것이 나이다. '진짜 나'란과잉 자의식이 주는 '나'가 아닌 것이다.
스님의 수필은 여백이 많은 '시'라면 이 책은 미공개 강연 채록집이라 그런지 지근거리에서 해타를 맞으며 육성으로 듣는 '수업' 같다. 군더더기 없이 차맛처럼 시간이 가도 은은한스님의 수필은 여러 번 읽어도 다채롭다. 반면에 이 책은 강연의 특성상 중요한 말씀은 부언되고 강조할 만한 부분은 길어지기도 하는데,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명약관화! 요지의 선명함이 뚜렷하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다.
진급 지향적이고 자기 이익에 밝아서 거리를 두던 직장 후배가 올해는 일적으로 자꾸 얽히더니 급기야 부서원 인선 문제로 나의 뒤통수를 쳤다. 내 직장 생활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고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을 그렇게까지 가져 본 적이 없다. 일 문제로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다른 의견이야 논할 수 있다 하여도 '인간성의 문제'라면 나도 뭐 별 수 없는 인간이지 싶어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참을 수 없이 힘들어서 마음을 나누는 동료에게 뒷얘기를 하고 말았다. 웬걸, 그런 나의 감정과 행위가더 죽을 맛이 되어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된다고 나를 위로해 주는 동료였지만 표현해도 힘들고 표현하지 않아도 힘들고 이 무슨 개떡 같은 일인가 싶은 괴로움.
번뇌와 욕망은 철사를 끊는 것처럼 싹둑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질적인 변화를 줄 수는 있습니다. ... 탐욕으로 흐르는 마음은 베푸는 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돕고 나누는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기운은 연민의 정으로 또 자비심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이 좀 얄밉다, 밉상이다, 그런 마음이 들면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세요. 내 마음을, 내 한 생각을 돌이키게 하는 선지식이니까요. ... 즉 스승입니다. ... 내 마음이 상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 진리는 바로 내 안에, 내 곁에 있습니다.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나의 선지식 중에서 p.133
체했던 것이 쑤-욱 내려가는 시원함이 이런 것인지. 이 나이 되도록 사회생활의 미숙으로 끙끙대던 내겐 시쳇말로 '사이다' 약발이었다. 미워해서 시원하고 좋으면 그리하면 된다. 그런데 사는 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결국 내 마음이 평정을 이루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문장을 다양하게 변주하여 말씀하시지만 그 속의 명약관화는 내게 설명 덧붙일 필요가 없는 해법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