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어떤 직업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는 어른이 되면 교과서 편집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단언컨대 이렇게 말하는 아이는 99.99%의 확률로 없다. 사실 속으로는 100%라 말하고 싶지만, 만에 하나 나올 수 있는 예외의 자리를 버릇처럼 남겨 둘 뿐이다. '편집자'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유튜브 영상 편집자를 떠올리는 시대에 일반적인 책 편집자를 떠올리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교과서' 편집자라니. 그런 직업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을 텐데, 하물며 그것이 되고 싶은 아이가 있을 리가.
사실 세상에는 연예인, 유튜버,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운동선수 등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직업보다, 말만 들어서는 뭘 하는 사람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직업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 보통 그런 직업들은 대충 '회사원'이란 명칭으로 뭉뚱그려져 있다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이력서를 쓰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첫 출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직업을 마주한다. 초면의 직업과 통성명하기도 전에 어영부영 출퇴근을 반복하며 그 직업의 종사자가 된다. 교과서 편집자도 그런 직업 중 하나이다. 어린 시절 장래 희망으로는 절대 언급될 일이 없는, 이력서를 내기 전까지는 있는지도 몰랐던, 그 일을 하는 나를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는 직업.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직업을 설명해야 할 때가 오면 참 어렵다. 가령 친인척 경조사, 택시 기사님과의 스몰 토크, 오랜만에 열린 동창 모임, 소개팅 등의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교과서 편집자'라고 대답하기에는 부연설명이 너무 많이 필요한 것이다.- 인쇄소 아닙니다. 디자인 아닙니다. 편집입니다. 편집이 뭐냐면.... - 그나마 깔끔한 설명은 직업 대신 회사가 어디인지 말하는 것이다. ‘OO 출판사 다녀요.’ 그러면 “아, 그러시구나.” 하고 대화가 유야무야 종결된다. 수많은 ‘회사원’들이 그렇듯 나 또한 자신을 어느 회사의 직원으로 정의하는 것이 간편하다.
그렇지만 내가 10년 넘게 몸담아 온 업은 ‘OO 출판사의 직원’이 아니라 교과서 편집자이다. 그것으로 열심히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그 직업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 일을 사랑...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법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다. 택시 안에서는 대충 얼버무릴지언정 어딘가에는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아무도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사실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나의 직업을 ‘회사원’이나 '어느 회사의 직원'으로 단순히 퉁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글을 쓴다.
+)
이 글로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한 후, 프로필에서 작가 키워드로 직업을 선택하려고 보니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회사원’ 뿐인 걸 보고 헛웃음이 터졌다. 그나마 뭐라도 추가하자면 ‘에디터’ 정도일까. 하지만 ‘에디터’라는 단어는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나. 그리고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을 지양한다고.
세상의 모든 직업 수만큼 키워드를 늘리는 것이 그 기능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안다. 결국 더 열심히 쓰고, 말하는 수밖에는 없나 보다. ‘회사원’이라는 거대한 이름표를 뜯어 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