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를 정리하면서....

中年 中心

by 허니


25년가량을 살던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 오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늘 미뤄왔던 옷장 한편에 있는 넥타이를 펼쳐 놓았다. 이사 오면서 이미 한 차례 정리해서 버렸지만 아직도 많다. 하긴 이사 오기 전 대략 300여 개는 된 듯한 많은 넥타이 중에 엄선해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이사 온 후 1년 동안 타이를 한 번도 매지 않았다. 방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고는 오래된 것, 색상이 화려한 것, 차분한 느낌이 있는 것, 계절에 맞는 색상 등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분류를 해 보았다.


정리해다 보니 면면이 나름의 스토리가 있었다. 회사에서 승진하면서 단상에서 사령장을 받았을 때, 회사의 큰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PT. 할 때 매었던 타이,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을 때 매었던 타이, 제자가 먼 타국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선생님이 생각났었다고 하면서 현지에서 사 온 타이,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나를 매섭게 옭아맸던 타이 등등이 모두 한 자리에 있다. 30대부터 시작한 바쁜 직장생활을 함께 한 타이를 보면서 나의 삶의 한 단편을 보는듯해서 한편 기분이 ‘짠’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는 계절별로 재킷과 바지를 챙겨서 늘 매주 셔츠 7-8벌을 미리 다려서 옷장에 걸어 놓았다. 그러면 나는 출근하면서 재킷 색상과 셔츠에 몇 개의 타이를 얹어보고는 마음에 드는 걸 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틀 계속 같은 타이를 매지 않는다는 내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 왜일까?


나는 남자에게는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따라서 타이를 선택하고 매는 행위가 변화를 꾀하고 작은 ‘멋’을 창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계절별 재킷이야 많아야 서너 벌 정도지만 타이는 다르다. 어쩌면 자신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타이 맬 때 비교적 신중하고 진지한 모드로 바뀐다. 이 색상이 좋을까? 저 디자인이 셔츠에 맞을까? 재킷도 다시 입어보고 타이의 길이도 다시 한번 가늠해 본다.


타이는 절제의 미(美)를 갖고 있다. 타이를 매면 일단 단정하다. 단정하다는 것은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공직사회에서 조차도 노타이로 근무하는 분위기이지만 예전에 어느 기업에서는 여름에도 긴팔의 셔츠와 타이 착용을 의무화했었다. 깨끗하고 단정함을 넘어서 화이트 칼라는 엄숙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직이 경직되어 있거나 폐쇄적이고 형식적인 걸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타이를 매는 것과 매지 않는 것이 조직문화를 대변할 만큼 그 의미가 컸었다.


그 시절 공무원이었던 한 친구는 늘 같은 색상의 타이를 매고 다녔다. 타이를 꼭 해야만 하고 튀지 않는 색상으로 해야 한단다. 단정하게 보여야 하는 조직의 특별한 ‘주문’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친구의 일상은 타이의 색상이나 그 숫자만큼 변화가 없었다.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보는 남자들의 대부분은 검은색의 타이나 비슷한 색상의 타이를 단체로 맞춘 듯하다. 하기야 영정사진 속 고인조차도 한결같이 남자들은 타이를 맸다. 이렇듯 타이는 일체감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흐트러지지 않는 옷매무새의 완성과 질서 등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타이를 매면 질서 정연한 순서와 예측 등등이 떠 오른다. 그만큼 타이를 매는 행위는 준비와 대응을 보여주는 남자의 아이콘이다. 이렇듯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남자 복장의 일부이다. 우습기도 하고 알 듯 모를 듯한 추상적 디자인의 타이를 매고 매일 집을 나서는 남자, 타이의 미스터리는 상징성에 가치를 둔다. 일이 있는 곳에 타이가 있듯이 그만큼 타이는 일과 남자 그리고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타이를 부지런히 매고 다녔다. 나름 변화를 준답시고 다양한 색상과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바꾸어서 다니면서 마치 타이 수집가처럼 타이를 많이 갖게 되었고 심지어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직원들이 타이를 선물해 주는 일도 심심치 않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타이를 하고 다니지 않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동시에 컨설팅 일을 했던 시기였다. 조금은 자유스러운 복장과 내 나름의 기준을 정해 세미 정장 타입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부터 타이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컨설팅 현장에서 만나는 고객에게도 초기 미팅부터 양해를 구하면서 ‘노타이 철학’을 언급한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매는 것보다 푸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일러준다. 물론 내가 편해야겠다는 것도 고려했지만 사실 중년을 맞은 고객에게는 긴 세월의 ‘구속’에서 풀어놓은, 내려놓는 ‘자유’를 강조하고 싶었다. 구속과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중년의 자유를 찾는 작은 행위일 수 있겠다. 이제는 형식에 얽매지 말았으면 한다.

오랜 시간 ‘나’를 매어 놓았던 그것에서부터 ‘나’를 놓아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중년, 지금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중년 세대는 과거의 형식과 구속, 질서와 규칙, 엄숙 과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타이는 필요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의 당당함이 있으면 굳이 타이를 매고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나의 격(格)이 자연스레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제법 시간이 걸려 고르고 고른 타이 30여 개를 가지런히 옷장에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처분할 타이를 한 곳에 모아보니 제법 많다. 그런데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누구에게는 새로운 디자인이고 색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깨끗이 세탁해서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할 작정이다. 물론 ‘중고’라는 얘기를 해야겠지만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타이를 몇 개 곁들이면 나름 예의를 갖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