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열매를 맺는 순종
죽었다고 고백했는데
왜 아플까.
잠든 줄 알았던 욕심이
조용히 내 발목을 잡는다.
죽었다고 고백했는데
왜 아플까.
버린 감정의 그림자가
아직도 나를 따라온다.
죽었다고 고백했는데
왜 아플까.
새 사람의 마음이
연약한 현실에 찔린다…
말씀을 따라가려는 마음과
잘려나간 옛 습관이
유령 통증처럼 다시 찾아온다.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아직도 미세하게 숨을 쉬고 있다.
둘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육체의 정욕은 쉽게 고개를 들고
나는 그 싸움에서
여전히 지고 만다.
선과 악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우리 기준으로 선악을 재단하며
스스로 옳다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마음대로 사는 삶의 끝은
언제나 수치와 사망이다.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길은 단 하나,
예수 안에서 죽는 것.
목사님 설교 말씀 중, 야곱 이야기가 깊게 남았다.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던 야곱.
하나님은 그의 환도뼈를 치심으로,
야곱이 더는 자기 힘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셨다.
그 자리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매달렸고,
그때 그는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을 받았다.
환도뼈가 부러진 건,
야곱이 자기 힘으로 살던 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하나님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예수께서 다 덮어주시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다.
나는 이 말씀이 너무 좋다.
내가 그것을 경험했기에...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39살 10월의 어느 날 밤.
내 인생 가장 큰 반전, 잊을 수 없는 그 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 야곱에게 오신 것처럼.
과거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더럽든,
예수님은 묻지 않으신다. 따지지 않으신다.
그냥 다 덮으시고, 조용히 새 시작을 열어주신다.
제대로 예수 만난 사람은 자존심이 없다.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욕을 한들 무슨 기분이 나쁘겠는가.
내가 받을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다고 불평불만하는 사람들.
사실 나도 그랬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죽은 사람은 자존심이 없다.
자존심이 꿈틀거리고 기분이 상한다면,
그건, 유령 통증이다. (환상통)
없는데 아픈 것을 느끼는 것,
이미 잘려 나간 옛 자아가 여전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
옛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육체의 정욕.
이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은혜를 받고 나면 이런 생각들은 다 죽는다.
모든 게 감사로 변한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와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정욕에 휘둘리는 나약한 영혼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다.
죄를 따라 살아가면 수치와 죽음뿐이고,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사는 방법은 로마서 6장 22절에 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로마서 6:22)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방법은 말씀대로 사는 거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생이다.
나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
이제 내 안에는 감사만이 남기를.
내 자존심은 십자가 뒤로 감추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 드러나는 삶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