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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티바람 May 06. 2024

추억팔이

48일 차

집에 고이 모셔놓고 있는 세 대의 카메라 중

두 대를 처분하였다.


마치 세 명과 나 혼자 썸을 탔던

지난 흑역사들이 다 지워지고

결국 한 명만 남은 기분이다.


돌이켜보면 둘이든 셋이든

카메라를 대하는 내 모습은

늘 짝사랑이자 외사랑이었다.

초보인 그때도, 그나마 덜 초보인 지금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단 한 장의 거짓말도

허락하지 않았던 정직한 우리 관계는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아마 흔들거리는 나무와 흔한 꽃들을

주로 찍었던 것 같다.

결과물의 하단 여백에는 한 줄로

문장 따위를 끄적여놓기도 하였다.

우포늪을 흑백으로 찍었던 기억도 난다.


이제는 짝꿍 사진 말고는 피사체에 대한

욕심이 다 사라졌기에 이참에 좀 더 단정하고

작은 카메라로, 그러나 몸값은 비싼

그런 카메라를 사보려고 했지만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다.

돈도, 마음도, 상황도 등등


툭 튀어나오는 예상 밖의 사진 한 장처럼

이 것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끝까지

예상을 빗겨나간다.


지금은 가끔씩 사서 쓰는 일회용 카메라의

픽, 하는 맥 빠진 셔터소리로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중고나라를 오작교 삼아

추억을 잘 팔았으니

성공한 추억팔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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