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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티바람 May 06. 2024

꿈, 그리고 과일가게

49일 차


한국에 도착해서 두 번의 잠이 들었다.


한 번은 나의 칭얼거림을 듣고

더 지쳐버린 짝꿍이 잠든 소파 밑에서,

그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내 침대에서.


꿈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왔다.

아픈 우리 엄마의 알약을 챙겨주고 계셨고

조금 낯선 상황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못 미더워서 챙겨주시러 오신 건지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응원하시는 건지

기분이 이상했다.


다음 꿈에서는 보홀의 과일가게에 갔다.

망고가 1kg에 110페소였고

역대급 가격에 나와 짝꿍은 로또라도

된 것 마냥 부둥켜안았다.

길거리였지만 과일가게 벽면만큼은 

떠발이로 줄눈을 잘 맞춘 흰색 타일이 돋보였다.

그래서 유독 산더미 망고 위에 파리와

망고스틴에 몰린 개미들이 눈에 거슬렸다.

우리는 과일을 신나게 골랐고

계산을 못한 채 꿈에서 깼다.


유독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는 주였다.

모든 것이 내 욕심 때문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 것 같다.


바라봐주길 바라고

더 바라보기를 원하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의 정지선 없는

도로에서 욕심의 안과 밖을 다 챙기고자 하는

바보의 모습이었다.


마음을 비우고자 바쁘게 두 달을 보냈지만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해 무심결에

스스로를 자책하다 멈추고를 반복한다.


그러던 중 아침에 밝았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방을 조심스레 관찰하던 벌레를 발견한다.

캐리어에 무임승차한 보홀의 무시무시한 바퀴벌레는 신나게 한국 여행기 1일 차를 준비했겠지만 바로 쾌도난마! 

팬티바람의 방구석 전사 앞에서는

살충제와 함께 지옥행 급행열차로

환승하며 끝이 났다.


덕분에 아침부터 식겁한 나의 정신세계는

리셋이 되었고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다.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꼴 보기 싫은 회사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혹은 웃어야만 하는 회사형 인간으로 돌아간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축복받을 일이지만

영 탐탁지 않다.

다만 짝꿍이 있어서 안심이 좀 된다.


아까 바퀴벌레를 처형하며

잠시나마 내 안에 야수의 심장을 가진 전사처럼 적장, 아니 직장 한 복판으로 들어가야지.


사실 바퀴벌레는 너무 무서웠다.

진짜 메뚜기 마냥 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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