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착한 달팽이를 임보 중입니다

달팽이와 함께했던 지난 겨울을 회상하며

by 우정

1. 느닷없이 시작된 만남


24년 11월 15일,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세 달 즈음 됐을까 했더니 꼬박 다섯 달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우리 제법 오래 함께 했구나? 쌀쌀해지기 시작하던 날에 만나 겨울을 꼬박 돌고 봄이 찾아왔다.


처음부터 목표는 방생이었다. 부모님댁 텃밭에서 신선한 작물을 먹던 녀석이 불운하게도 상추를 먹다 이 삭막한 도시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무려 300km를 택배상자에 실려 왔다. 집에 도착한 스티로폼 박스가 어쩐 일인지 온통 박살 나 있었으니 얼마나 거센 곡절을 거쳤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11월 15일, 달팽이를 처음 만난 날

겨우 1cm 남짓해 보이는 몸이었다. 이런 꼬마 녀석이 그 험한 길을 달려, 차디찬 냉장고에서도 10일을 버텼다. 늦은 저녁을 먹으려 훌훌 씻어 곁들임을 올리려던 상추 바로 그곳에 이 작디 작은 달팽이가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라 바로 작은 통에 집을 만들어주고 고민에 빠진다.


키울 수 있나? 아니, 자기돌봄도 잘 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딜. 풀어줄 수 있나? 아니, 이 자그만 녀석을 무성한 풀 하나 없는 이 동네에 어딜, 게다가 곧 찬 겨울이 오는걸.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임시보호 뿐이다. 다시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부족하게나마 잠시 보호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달팽이와 나의 함께살이가 시작됐다.

12월 19일, 당근을 맛있게 먹는 달팽이


2. 달팽이를 임보 중입니다


나는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야생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족했을테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축축한 흙도 없었고 이따금씩 내리는 시원한 비도 없었고 언제나 단단한 천장이 가로막고 있었고 먹거리도 신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노력했다. 달팽이에 대한 책부터 찾아읽었다. 그리곤 매일 같이 변을 치워주었고, 상추/오이/무/양배추/당근/포도까지 다양한 과채들을 며칠마다 물과 함께 넣어주었고, 자라난 몸에 맞게 집을 옮겨주었고, 이따금씩 물을 뿌려주었고, 때때로는 뚜껑을 열어 너른 땅을 활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1월 7일, 양배추 조각을 끌어안고 먹는 달팽이

기대하지 않았지만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았다. 먼저, 식구는 역시 식구라는 것. 이 녀석은 나와 먹거리를 공유한다. 채식을 하는 인간이라 내가 먹을 것이 달팽이의 것이었고 달팽이가 먹을 것이 곧 나의 것이었다.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핀셋으로 변을 치워주고 먹거리와 물을 챙겨주는 것은 분명하게도 돌봄이자 살림이었다. 누군가를 돌보기 시작하자 나를 돌볼 빈틈이 생겼다.


달팽이를 위해 생채소 장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집밥으로 순환되기 시작했다. 너의 것이 나의 것이어서. 달팽이 집 안에서 말라가는 채소들을 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감각했다. 해를 넘기던 새로운 마음과 더불어 집 안의 공기와 청결 따위도 더 신경을 써본다.


달팽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됐다. 집에 생명체가 산다는 것은 참으로 생경한 감각이었기에 짧지 않은 시간 달팽이를 관찰하고 또 살폈다. 달팽이들은 어딘가 몸을 숨기는 것을 좋아한다. 흙이 없는 이 집에서는 잎파리 아래로 종종 몸을 숨기곤 했다.

2월 14일, 물에 몸 담그다 나오는 달팽이

달팽이는 물과 비를 좋아한다. 습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지만 그보다는 물 속을 잠수하고 또 헤엄치던 녀석의 활기찬 몸짓이 훨씬 더 강렬히 와닿았다. 어쩌면 이 또한 체험적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재빠른 움직임으로 어푸어푸 한참을 물장구치다 몸을 쭈욱 뻗어 밖으로 나온다. 실제로 놀이인지 생존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어찌되었건 타자의 속마음을 알 수 없고 관찰자로서 전해져오는 감정은 놀이에 가까웠다. 물 속에 들어가지 않을때에도 물을 맞을 때면 비를 온전히 맞으려는듯 몸을 쭈욱 뻗어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꼭 그랬다.


달팽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주변 이들이 그 이름을 물어봐 왔다. 나는 부러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이름을 짓는 순간 타자와 나의 1:1 관계는 시작된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나에게로 와서 ‘무엇’이 되니까. 그는 불운하게도 이 집에 불시착했고, 나는 그에게 ‘무엇’일 수 없었고, 그는 나에게 ‘무엇’일 수 없었다. 아니, ‘무엇’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어느덧 달팽이는 5cm 가량의 몸으로 자라났다. 제법 장성해보인다.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봄이 왔다. 기약했던 3월이 왔다. 이제는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때가 온 것이다.



3. 이별을 앞두고 고민스런 마음들


다섯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아마 정말로 믿을 수 없었던 시국이 한 몫 했을테지. 온통 혼란한 세상에서 어쩌면 이 달팽이가 나에게 약간은 기댈 곳이, 혹은 숨 쉴 빈틈이 되어줬는지도 모르겠다.


달팽이는 이 상황을 알고 있을까? 전혀 모르겠지. 그는 야생을 그리워할까, 두려워할까, 기억하지 못할까? 이별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아무렴 때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스러워진다. 달팽이가 원하는 것을 결단코 내가 아는 수는 없음에도 달팽이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풀어주어야 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섯 달을 함께한 정이 불쑥 끼어들때면 그런 생각이 들고 만다. 꼬꼬마일 때 사람의 집에 온 이 녀석이 과연 바깥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흙의 감각을 기억하기는 할까. 야생의 풀은 잘 먹을 수 있을까. 포식자로부터 도망은 갈 수 있을까.


3월 20일, 집(통)을 탈출했다 다시 데려온 달팽이

그러나 그러다가도 마음을 다잡는다. 야생의 생물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설사 금세 어떤이의 먹이가 되더라도 그조차 야생인 것이기에. 다른 이가 하루를 더 잘 살아갈 영양원이 되는 것이기에.


다만 그의 행방이 조금 궁금하긴 하겠다. 놓아준 곳으로부터 얼마나 떠나갔는지, 힘차게 어디론가 이동해갔는지,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반드시 궁금할 것이다. 과연 나는 그를 그리워할까? 그건 때가 와봐야 알겠다. 잘 지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 수밖에 없겠지.


너른 땅을 밟아.

그게 네 삶이야.

흙과 바람을 맘껏 만끽해.


곧 다가올 야생의 삶이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