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제 곧 중 2가 되는 아들을 가진 지인 분을 만났습니다. 이 시기 엄마들의 고민은 공부, 진로, 교우관계 등 여러 가지가 있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마 성큼 다가오는 ‘사춘기’가 아닐까 해요.
급격히 뇌가 변하는 시기. 사춘기! 제 맘대로 변해버린 뇌 때문에 짜증은 늘고, 전에 없던 반항심도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하고요. 급기야는 ‘나는 누구인가?‘ ’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것인가?‘ ’ 우리는 어른들의 꼭두각시인가?‘ 등의 생각과 함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듭니다. 이 꼬여버린 뇌의 기억. 문득 저는 어떤 사춘기를 보냈는지 생각해봅니다.
사춘기의 총질량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그리 큰 사춘기를 겪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는 스스로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한없이 어색했습니다. 그때 나름 인생에 큰 일들이 많았는데 일기도, 편지에도 그때의 나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죠.
원래도 약간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였다 보니, 늘 집에선 비슷한 감정선을 유지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에 거역하거나 심각한 반항을 하지도 않았고, 학원을 빼먹은 적도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건 기억의 왜곡도 있을 수 있어서 엄마에게도 물어봤지만, 엄마 역시도 저는 특별한 사춘기 증상은 없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도 않았습니다. 한 때 잠깐 너바나, 퀸, 오아시스에 심취해, Rock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반항심을 리스펙 동경하지는 않았어요. 책은 교과서로 충분했고, 철학적인 책은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다음 시험에 잘 보면 되지. 엄마가 혼내면, 혼나면 되지 생각했고, 첫사랑이 다른 애를 좋아한다 했을 땐, 그냥 내 마음을 전하면 됐지.. 했습니다. 심지어 중학교 1학년 시절, 아빠의 잘못된 보증으로 갑자기 학교와 멀어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도, 그럴 수도 있지 했죠. 또 첫 번째 수능을 망쳤을 때도, 재수하면 되지. 참 단순하고, 쉽고, 긍정적이었습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사춘기의 총질량은 정해져 있다는 것. 누구도 일생에 한 번은 뇌가 급격히 변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
내가 사춘기가 있었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단언하던 엄마가 한마디 덧붙입니다.
“내 생각엔, 네 사춘기는 지금 온 것 같아.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진짜 그런 것도 같습니다. ‘퇴사’라는 이름으로 제 사춘기, 아니 사십춘기의 뇌는 급격히 요동치고 있습니다.
뒤늦은 사춘기가 퇴사와 함께 찾아오다.
저의 퇴사는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퇴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약간 충동적인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시크하지만, 저의 가능성을 응원해주고 배려가 넘치는 리더와 선임의 리드에 잘 따라와 주는 후배님들. 정확히 잘 들어오는 월급. 때를 맞춘 승진. 어깨가 으쓱대는 복지들. 이 모든 것들 덕분에 제 회사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워낙 같은 직무를 오래 했고 브랜드에 대한 저의 애정이 식었고, 뭔가 무기력해진 조직의 역할을 경험하며 변화에 대한 신호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이직을 해볼까 마음을 먹고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긴 했지만 과연 이직이 답일까? 생각했어요.
‘나는 계속 직장인으로 업을 이어 나갈 것인가?’
‘내 인생의 다음 챕터는 무엇일까?’
’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뭘까?‘
’그래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수 없이 많은 말풍선들이 머리를 채워가던 저의 뒤늦은 이 사춘기는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던 초여름날 아침,
“저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우물쭈물 원온원과 함께 본격적인 반항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