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퇴사자입니다.
이제 퇴사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초보 퇴사자입니다. 저를 소개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이곳에서 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퇴사자’라는 단어를 저의 대표 단어로 골라봤습니다.
저는 2022년 8월 16일을 끝으로 2010년 4월부터 다닌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약 13년 동안 대한민국 이커머스 회사에서 마케터로 근무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 하고 싶었던 천직 같은 ‘마케터’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너무 좋은 선배님, 후배님들과 일하며 회사를 다니게 하는 3대(?) 요소 돈, 사람, 직무에 2가지를 만족하며 지냈습니다. (돈은 주관적인 것이니, 나름 만족스럽기도, 불만족스럽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엄마는 말합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뒀나?”라고요. 그리고 표면적으로 저를 본 사람들의 대다수도 저에게 “왜 그만뒀어요! 아까워서 어째요…”라고 말합니다. 또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잘 그만뒀어. 근데 결정적인 계기가 뭐야?”라고 묻습니다. 또 마지막 퇴사 인터뷰에서도 가장 첫 질문은 “왜 그만둬요?”라고 묻습니다. 퇴사를 하는 이유에는 각자 여러 이유가 있겠죠. 저 또한 제가 왜 회사를 그만두는지를 딱 잘라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왜 퇴사했는데요?
퇴사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직해?”였습니다. 저는 저의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하고, 일하는 티도 많이 냈기에, 당연히 제가 계속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올 초에는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해볼까? 이력서를 업데이트해두기도 했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이직을 시도해보지도 않았고, 감사하게도 손 내밀어 주신 분들에게 감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언젠가 이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습니다. 때문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언제든지 출격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말 퇴사의 이유에는 이직이 없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저의 퇴사와 가장 많이 연결된 것이 육아입니다. 지금 8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주는 시댁 식구들이 있고, 재택과 유연근무제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덕분에, 워킹맘의 마의 구간인 <초등 1학년>도 어느 정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아이가 1명이든, 2명이든 일과 육아, 그리고 가정살림을 병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합니다. 때문에 가장 심플한 이유는 ‘육아에 전념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저는 사직서 사유란에 ‘육아’라는 두 글자만 썼습니다. 퇴직 이유에 ‘육아’라는 두 글자를 적고, 말함으로써 저에게는 각기 다른 장점, 단점이 있었습니다. 좋은 점이라 하면 퇴사라는 말 뒤에 따라오는 질문들이 비교적 적어, 설명의 피로함이 덜 했습니다. 퇴사 인터뷰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이죠. 다만, 아쉬움이라 한다면 이건 뭔가 자주적이지 않은,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뭐 그런 복합적인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저는 파이어족도 아닙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돈 걱정 없이 살아갈 만큼의 돈도 없습니다. 당장은 퇴직연금에 찍힌 숫자만 보고 잠깐의 위로를 받고 있고, 저 대신에 돈을 벌고 있는 남편도 있기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돈을 아껴 쓰고, 저축하고, 재테크하는 유용한 재능도 없습니다. 그리고 맨날 엄마가 말하길 씀씀이도 큰 편입니다. 당연히 미래의 제가, 아니 우리가 갚아갈 빚도 있고, 파란 불빛 속에 묻힌 안타까운 돈들도 있고요.
퇴사라고 쓰고, ____라 읽습니다.
저는 아직 저의 퇴사 이유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저 여러 가지 들이 복합적으로 뭉쳐 어느 날 ‘퇴사’라는 공기가 무겁게 짓눌러왔습니다. 그냥 제 마음속에서 ‘이제 때가 된 것 같다’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퇴사자가 되었습니다.
퇴사한 지 이제 2개월이 조금 지났는데,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렇게 마냥 놀아도 되는 건지, 내 경력이 단절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그런 마음이요.
그래서 저는 저에게 묻습니다. 진짜 네가 퇴사한 이유는 뭔데?라고요. 이제 두서없이 끄적였던 노트와 메모장에 적힌 말들을 조합해 해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가장 크게는 저의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요즘 매일 철학책을 읽고 있습니다. 답답할 때마다 막연하게 가볍고 쉽게 읽히는 철학책들을 뒤져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은 참으로 유용하고 감사하게도 제가 작은 실마리를 줍니다.
파라노이아 Paranoia는 편집증을, 스키조프레니아 Schizophrenia는 분열증을 말한다. 파라노이아는 무엇에 편집하는 걸까? 바로 ‘아이덴티티 identity’다. (중략) 그렇다면 다른 한 편의 스키조프레니아는 무엇을 분열하는가? 이쪽 또한 ‘아이덴티티’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기반이 어느새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바로 그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게다가 ‘자신’이라는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분리시킬 수 있을까? 틀림없이 그때는 파라노이아에서 스키조프레니아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중에서
지금껏 제가 파라노이아의 우직함으로 살아왔다면, 이제 스키조프레니아의 가벼움으로 세상에 설 때가 되었습니다. 이 가벼움이 작은 깃털처럼 하찮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언젠가 하늘을 나는 용기가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사실 ‘퇴사’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계속 ‘퇴사’라는 말을 되뇌면, 뭔가 끝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노골적으로, 당당하게 ‘퇴사’라는 말을 써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어떻게 읽힐지는 제 이야기들이 마무리될 때 즈음 뭔가 괜찮을 걸로 가득 채워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