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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Feb 19. 2023

도대체 나 다운게 뭔데?

  오랜만에 만난 회사 후배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평생 회사에 다닐 것 같이 사회생활을 했던 내가 퇴사를 한지 반년이나 지났으니, 이따금씩 다들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했다. 워낙 친했던 후배라 숨길 것도 없이 그냥 지금의 내가 사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재잘거렸다. 가만히 듣던 후배가 말한다.

"흠... 뭔가 언니답지 않아요."

  순간 머리가 정지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뭐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잘 살고 있어!"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후배의 말이 자꾸 내 머릿속에 남았다.

   아이를 데리러 학원에 가야 해서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헤어졌다. 씁쓸했다. 자꾸 내 머릿속에는 후배의 말과 차마 내뱉지 못한 그다음 내 대사가 둥둥 떠나녔다.

'그래서? 도대체 나 다운게 뭔데?'


  예전에 나의 본캐는 직장인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본캐라 믿었다. 본캐 같은 부캐가 엄마, 아내, 독서모임 운영자 그 정도? 하지만 나의 요즘은 단순히 시간의 비중으로 설명하자면 온통 부캐 천지의 삶을 살고 있다.

 

  먼저 초등학교 2학년의 '학부모'. 아이를 깨우고 학교를 보내고, 학원을 보내고 밥을 해주고, 함께 책을 읽고 숙제를 한다. 그리고 엄마의 기본적인 역할을 넘어 아이의 반 친구 엄마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 같이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학원 정보 같은 것도 수집하는 부캐 '전업맘'으로 살고 있다. 아이가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있는 동안 틈틈이 '프리랜서 마케터'로서 크고 작은 일을 맡아하는 중이다. 또 독서, 글쓰기, 습관 형성 등 크고 작은 '커뮤니티 운영자'로 발을 담그고 있고, 월 3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광고에 낚여 '수강생' 모드로 공부도 한다.

 

  본캐로 여겼던 '직장인'은 치열하면서도, 우아했고, 속박되었지만 자유로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온전히 그 아이러니한 본캐를 '나'로 여기며 남들이 보기에, 또 내가 받아들이기에도 꽤 괜찮은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리저리 부캐를 널뛰기하며 부산스러워 보이기도, 또 안쓰러워 보이기도, 또 어색해 보이기도 하나보다. 남들 눈에도 또 내 눈에도.


  문득 그런 내가 정말 내 본캐가 무엇인지. 나 다운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다시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 나 다운 것일까? 언제나 멀게만 느껴졌던 사업을 하는 게 나 다운 것일까? 진짜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 정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젠장. 왜 40살이 되었는데, 직장을 뛰쳐나온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허덕이면서 답을 찾지 못하는 건지. 그저 남의 말 한마디에 또다시 내 삶에 물음표를 마구 던지는 건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한심스러워진다.


나는 아트만을 다시 내 안에서 발견하기 위해서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나는 다시 살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길은 또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그것은, 그 길은 멍청하다. 그 길은 꾸불꾸불하고 어쩌면 빙빙 순환하는지도 모른다. 그 길이 제멋대로 나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에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도전할수록 계속 바뀐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건지 불현듯 현타가 세게 올지라도, 누군가의 눈에 내가 안쓰러워 보일지라도 일단은 가야겠다. 뭐든 도전해 봐야겠다. 그 과정이 조금 멍청해 보일지라도, 꾸불꾸불 빙빙 순환하고, 길이 제멋대로 나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다시 직장을 다니든, 멀게만 보이던 사업을 하든,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키우든, 무엇을 하든 간에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고, 진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알고 싶어 미치겠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짜 나다운 것이, 내가 행복하게, 진정성 있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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