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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Apr 24. 2023

보여주기 위한 나날들.  

  학창 시절에 들은 엄마의 잔소리는 중요하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40살이 가까워져도 그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오늘도 아이에게 긍정적인 잔소리만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요즘, 아니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는 그 시절 엄마의 잔소리가 있다.

"너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만 중요시하는 거 같아!" (최대한 순화시켜 본 말투다.)

즉, 내실보다는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뭐 껍데기만 번지르르하다는 건가. 엄마에게 그 의미들이 뭔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뭐래'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 말이 메아리치고, 잔상이 번지듯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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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한 주씩 글을 써보려 노력 중이다. 꽤나 긴 시간을 노력하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발행'의 버튼 앞에 줄 세워둔 글들이 한가득이다. 다만, 모든 것들이 미완성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다 보니, 늘 힘이 들어간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외치고 다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발행하면서 꽤 괜찮은 글을 짜잔 하고 내밀어보고 싶다는 마음인데, 말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꼬이고 또 꼬인다. 만약 그 옛날 펜이나, 타자기로 적었다면 내 방에는 미친 듯 구겨진 종이가 가득했을 것이다. 다행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 있는 이 컴퓨터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없지만, 내 머릿속은 쓰다가 구겨버린 종이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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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같이 일어나 일기를 쓴다. 사실 일기라고 말을 하지만 그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남에겐 보여주기 싫은 그날의 감정쓰레기통 같은 셈이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성도 없고, 그저 정신없는 내 머릿속과 비슷하게 그냥 뭐든 털어놓는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도 털어놓고,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털어놓고, 설레는 것들에 대한 소녀적인 감성도 부어댄다.

그냥 이곳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이건 나 혼자만의 기록이라는, 나의 꾸미지 않는 날 것의 내 모습이기에 부담 없이 털어놓고, 미련 없이 덮어버린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다. 하루를 시작하는 명상이랄까.



  다시 읽기는 싫고 알아보기 힘든 내 감정의 종이들은 그런대로 쌓여가는데,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러브레터 같은 글들은 자꾸 길을 잃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예쁘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난데. 내 기록, 내 생각의 단상들이 뒤죽박죽 한 종이들로만 남게 될까 봐 문득 두려워진다.

나중에 '내가 왜 이런 글을 썼지?'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누군가 공들여 쓴 내 편지를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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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오늘 메아리치는 엄마의 잔소리에 답해본다. 내실도 따지고, 보이는 것도 따지는 사람이 되어볼게. 글을 쓸 때는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어. 물론 내실이 단단해야 보이는 것에 진정성이 강해지지만, 누군가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솔직해지고, 용감해지는 법을 배워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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