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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8. 2022

자인장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

오일장은 상거래 장소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장,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부근의 화개장도 유명하지만, 짭조름한 간칼치 사러 가는 자인장도 빼놓을 수 없는 오일장 명소이다. 조선 시대 자인현 읍지(邑誌)에 의하면 자인장은 3일과 8일에 장이 서며, 장날에 3천~4천여 명의 사람이 모이는 경북 남부지역 최고의 시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인장에 들어섰다. 어물전에는 간칼치 사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제사상에 올리는 돔배기도 자인장에 손꼽는 명물이다. 김장배추며 건고추가 곳곳마다 가득하고, 이른 오후인데도 호떡 파는 아주머니는 반죽 그릇을 비우는 중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시장 뒷골목 난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촌부들이 보따리에 싸서 온 푸성귀를 한 움큼씩 펼쳐놓고, 그 한쪽에는 머리카락 성성한 아즈매가 가물치와 미꾸라지, 잡어 등을 몇 개의 통에 담아서 팔고 있다. 펄떡이고 꼬물거리는 물고기를 보니, 며칠 전 김장에 사용하고 남은 우거지가 생각난다. 추어탕을 끓여볼까나. 붕어와 꾹저구 몇 마리를 덤으로 얻는다.


추어의 ‘추(鰍)’는 물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의 합성어로 ‘가을 물고기’를 말한다. ‘동의보감’에는 추어(鰍魚)라 하고 한글로 ‘믜꾸리’라고 썼으며, 그 약효는 보중(補中), 지설(止泄)하다고 하였다. 18세기 초엽의 ‘난호어목지’에도 ‘밋구리’는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하였다. 19세기 중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미꾸라지는 ‘추두부탕(鰍豆腐湯)’이란 이름으로 표기하였다. 일제강점기의 ‘해동죽지’에서는 추어탕에 ‘천초(川椒)’를 사용했다고 명기했다. ‘초피’, ‘조피’, ‘전피’, ‘젠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초피나무 열매를 말하는 것이다.

미꾸라지는 지방·단백질·비타민 A가 풍부한 식품이다. 예부터 추어탕은 식욕을 돋우고 기운을 보강해주기 때문에 정력에 좋다는 속설이 생겼다. ‘본초강목’에는 발기가 되지 않을 때 미꾸라지를 끓여 먹으면 치료가 되고 양기를 북돋는다고 했다. 서양의 카사노바에 버금가는, 중국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 서문경은 여섯 명을 아내와 수많은 하녀를 거느리는데, 그의 정력을 상징하는 것이 미꾸라지였다.

추어탕, 추두부탕, 잡어로 끓인 어탕, 털레기탕은 바다가 멀리에 있는 내륙지방의 음식이다. 신혼 때 시댁에 갔더니 마당 가 가마솥에 김이 슬슬 올랐다. 시댁 식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두어 그릇씩 비웠고, 오가던 마을 사람들도 맛있는 음식이라며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나갔다. 알고 본즉 추어탕이라고 했다. 민물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나는 비위가 상해 구역질이 났다. 국에 뿌려 먹는 가루도 생소하고 낯설었다. 민물고기를 다루지 못하는 나를 위해 큰올케언니는 추어탕을 한 솥 끓여서 가져왔다. 남편이 고마워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는 민물고기를 다루고, 가끔 먹기도 하지만, 당시 올케언니의 그 정 나눔을 잊을 수 없다.

요즘 추어탕은 가을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수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다. 미꾸라지에 소금 뿌려서 씻고, 삶고, 으깨고, 끓이고…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사서 먹으면 편하겠으나 푹덕푹덕 직접 끓인 맛만 하랴. 자인장에서 사온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은 겨울나기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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