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건너편의 불화를 받아들일 용기
최근 출판 편집에 관해 배우고 있다. 먹고 살 길은 막막하고 할 줄 아는 건 없으니 그나마 가장 익숙한, 글을 다루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전업 작가를
택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눈부시게 빛나는 재능이나 굶어 죽어도 좋다는 열정, 혹은 평생 놀고먹어도 좋을 재산. 셋 다 나는 갖고 있지 않거든.
엊그제 출판 기획 단계에서 필요한 독자 설정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독자 설정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단 한 명의 선택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더라.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절충해서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들이 느낄 만족도를 각각 50:50 정도로, 상황이 긍정적이라면 (둘의 취향의 어느 정도 교집합이 존재한다면) 60:60 정도로 설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책이라는 경험재를, 즉 돈을 써서 구매해야만 그 효용을 판단할 수 있는 물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내가 그것을 구매했을 때 느낄 예상 만족도가 최소 70% 정도는 되어야 돈을 쓸 결정을 할 것이다. (사실 80%는 채워야 안정적일 것 같다.) 고로 다수의 의견을 적절히 수용한 그 책은 결국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출판에 대한 강의를 강사 분은 인간관계에 빗대어 설명했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아마 누구에게도 ‘절친’으로 여겨지지 못할 거라고. 누군가의 절친이 된다는 건, 그 사람과 불화가 있는 어떤 이와 나 역시도 불화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하는 일이지 않느냐고.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걸 받아들일 각오 정도는 필요하다고. 모두에게 60점 정도의 평가를 받는 사람과 누군가에겐 90점이지만 누군가에겐 30점도 안되는 사람의 차이가 출판에도 적용된다는 거다.
강의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도 않고 딱히 절친이라 할 사람도 거의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안되는 건가요?‘
차마 입 밖으로 낼 순 없었지만 기분이 묘하더라. 나는 참, 정상의 궤도와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구나. 다시금 확인받는 것 같았다. 한 사람에게라도 선택받는 일, 혹은 모두에게 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 모두가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인데.
강의 내용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건 오만이고, 특정 집단에만 선택받아도 완전 땡큐다. 아니, 집단도 아니고 정말 단 한 명에게만 선택받아도 지금 심정으로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을 판이다. 다만 보통 사람들의 인간관계 유형이 넓고 얕은 것과 좁고 깊은 것으로 나뉘는데, 둘 중 어디에도 못 끼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모든 사람에게 적당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쉬운 것 같다. 가까워지지 않으면 안 좋은 모습을 감추는 것도 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멀게 느끼고 신뢰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적으로 여기지는 않겠지. 깊은 관계를 구축하려고 진심을 솔직하게 터놓았다가 문제만 더 생기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 나는 책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책은 얼마 안 가 폐기되어 소각되겠지만 적어도 사람에겐 그보다는 긴 시간이 더 주어질 테니까. 시간 지나면 불타 없어지는 건 똑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