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새로움 사이에서

「이문동 블루스」를 읽으며

by 권권우

나는 학교를 6년 넘게 다니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그 사이에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섞여 있지만, 스무 살 그리고 스물한 살의 나는 좋아하는 일, 그리고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이후엔 보통의 대학생들이 다 그렇듯, 군대를 다녀오고 해외 나가서 교환학생도 가보고 그러면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세계를 만났다. 그러면서 점점 학교에 대한 애정은 떨어져만 갔다.

(객관적인 기준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비싼 등록금을 내며 20대의 절반을 넘게 학생으로 보내며 살았는데, 나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이 무색하게도 뭔가 성장을 이뤄낸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장 하나가 취업 전선의 만능열쇠 역할을 하는 시대는 수십 년도 더 전에 지나갔다지만, 그래도 뭔가가 남아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머리를 열심히 굴려봐도 잘 떠오르질 않는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허나 당장의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선 원서를 읽으며 독해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보단 번역본을 읽으며 수업 시간에 교수님들이 강조한 내용에 대해 빠르게 이해하고, 그것들을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집어넣어 시험지에 써내는 것을 택해야 했다. 힘들지만 얻어 가는 것이 많다던 원어민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것, 혹은 영어 통번역 수업을 듣는 것은 학점을 딸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어느새 마지막 학기까지 마쳤다. 같은 과 동문들은 다 갖고 있는 만점에 가까운 토익 성적, 갖고 있지 않고 그보다 어려운 토플, 아이엘츠 같은 것은 당연히 해본 적도 없다. 당장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만을 간신히, '남들이 하는 만큼'이라는 기준을 간신히 넘어가며, 혹은 그 끄트머리에 걸렸지만 몰래 발을 빼가며 어떻게 어떻게 졸업할 때까지 왔다. 가끔가다 넌 분명 재능이 있다, 감각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들어본 적도 있지만 사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칭찬은 기쁨보단 낯간지러움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얘기로 넘어갔지. 아무튼 나는 보통의 고학번들이 그렇듯 학교에 대해 갈수록 냉소적이 되어 가다가, 진짜 학교를 떠날 때가 가까워오자 모든 것이 아쉽고 뭉클해졌다. 이 책을 읽게 되니 더 그랬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남아있던 외대 근처 이문동의 정경들을 담아놓은 이 책은 2019년에 학교에 입학한 내게는 추억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동시에, 이제는 어떻게 해도 고학번인 나조차도 몰랐던 그 옛날의 이문동과 외대에 대한 생경함을 느끼게 했다.

새내기 시절 처음으로 선배와 밥약을 한 뒤에 커피를 마시러 가서,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먹었던 카페 꽁벨렝과 시험 기간이면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했던 카페 노마드,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지만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사태를 거치며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구제 옷 가게 런던모드, 그리고 너무 사랑했던 외대앞역의 정겨운 기찻길까지. 이제는 추억 속에만 자리하고 있는 그 장소들이 책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반가웠다. 그리고 슬퍼졌다. 나의 20대 초반, 이제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을 같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사라져버린 것이 새삼 너무 아쉬웠다. 코로나를 거치며 예전보다도 더 심해진 대학가의 개인주의에 대한 회의까지도 느껴지니 아주 미칠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문동 커피집은 여전히 외대 학생이라면 모두가 아는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고, 비록 이름은 바뀌었지만 뮤직펍 긱은 '락앤밤'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만 그 사이에 아쉬움이 녹슬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닦을 수도 없지만 굳이 닦아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기능의 연마제가 있기는 할까?

다만 그 녹슮을 이유로 무력해지는 것은 슬슬 벗어나고 싶다. 녹슨 부분을 그대로 두더라도 어찌어찌 움직여 나가고 싶다. 나는 평생 학생일 수 없는데, 이제 정말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만 하는데 언제까지 과거가 그립다고 억지로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느 드라마에선 붙잡고 있는 것보다 놓는 것이 더 큰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고, 다른 드라마에선 두렵더라도 그냥, 이유를 찾지 말고 그냥 가야만 하는 때가 있다고 했다. 내 마음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고, 여전히 겁이 많아서 이런저런 핑계들을 찾아가며 미루고 있었다.

진짜 졸업해야겠다. 아쉽다는 이유로 추가학기, 후기 이중 이따위 것들 알아보는 짓도 그만두겠다. 진짜 학교를 떠야겠다. 또 마음 약해질 것 같지만 악착같이 참아봐야지. 막상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나면 새로움에 적응하는 피로감 때문에라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졸업 요건 올해 안에 어떻게든 채우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월엔 졸업을 하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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