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공 4학년의 데일리 등딱지
나는 IT 관련 전공으로 대학 4학년 1학기의 끝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어도비 풀세트는 물론이고 유니티, 언리얼, 블렌더, 마야 등 다룰 프로그램들이 많다. 그러려면 제법 좋은 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한데, 나는 개인적으로 하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 또 학교에서 작업하는 걸 무지 싫어하기 때문에 한창 과제의 늪에 빠져 있을 시절 두 가지 불효를 저질렀다. 물론 돈 제대로 벌기 시작하면 갚겠다는 서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불효의 시작은 언리얼 게임엔진 수업을 듣던 어느 날이었다. 알바비를 털어 산 M2 맥북 에어를 영혼처럼 가지고 다니던 때였는데 (참고로 난 앱등이다) 언리얼 엔진은 윈도우에서 최적화되어 있다고 하잖아.. 여러모로 윈도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때 나는 디자인 꿈나무이기도 하니깐! 데스크톱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국 컴잘알 지인의 도움을 받아 160만 원가량의 풀세팅을 맞추었다. 이 데스크톱은 한동안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활약하고 있다.
두 번째 불효는 애프터이펙트 모션그래픽 수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애프터이펙트는 램 용량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는데, 나의 소중한 M2 맥북 에어는 글쎄 배경음악으로 깐 유다빈밴드 곡을 무슨 바리톤...으로 만들면서 버벅버벅 춤을 췄다. 심지어 제법 사양이 괜찮은 학교 컴퓨터로 작업해도 그랬다. 그만큼 에펙은 굉장한 프로그램이라는 것. 이때는 내가 정말 편하게 쓰는 맥 OS를! 들고 다니면서 뭐든 작업하고 싶다! 이 두 가지 니즈가 굉장했다. 꼭 필요하다는 충동적인 요청에 의외로 엄마는 날 믿고 승낙해 주었고, 다음날 바로 - 무려 M1 MAX 모델(그것도 2TB)을 새삥에 가까운 중고로 구입하고 말았다. 나에게 과분한 노트북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한 나의 M1 MAX는 언제나 시원한 16인치 화면과 터질 걱정 없는 용량과 램으로... 나를 굳건하게 서포트해주고 있다. 단점은 무게와 크기이지만, 여기서 내가 데일리 등딱지를 소개한다면서 데스크톱과 노트북 얘기만 구구절절하고 있는 이유가 나온다.
그때 나는 잔스포츠 백팩을 메고 다녔는데, 새로운 맥북 프로를 넣으니 가방이 맥북으로 변신하다 만 메타몽마냥 사각형으로 변함과 동시에 바닥과 맥북의 모서리가 얇은 천 한 장을 두고 바로 쿵, 하고 닿는 구조가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300만 원짜리를 보호하려면 백팩을 사는 건 불가피하겠다! 라며 들인 가방. 나의 '최소한은 무엇일까'를 생각했을 때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sweetch의 시티보이즈 럭색 M 크림색이다.
조건 :
1. (중요) 16인치 노트북을 안전하게 수납할 수 있어야 함
2. 밝은 색상이어야 함
3. 여러 차림에 두루 어울리는 납득 가능한 디자인
4. 오래 쓸 수 있겠다 싶은 만듦새
5. 웬만한 건 넉넉하게 때려박을 수 있는 용량
며칠을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무신사와 29cm 두 곳을 떠다녔는데, 어느 날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이 백팩이 보였다. 예산을 조금 초과했기에 고민하다 눈 딱 감고 샀는데 결론적으로는 대만족. 어딜 가나 난 맥북과 함께이기에 이 가방과도 늘 함께하고 있다.
이 가방만 있으면 웬만한 곳에는 다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최소한'을 탐구하는 글의 첫 번째 타자로 등장한 나의 백팩과 내용물들.
지갑, 립밤, 립스틱, 외장하드(+C타입&A타입 케이블), 충전기(C타입&8핀&애플워치 케이블), 아이패드, 맥북, 이어폰, 로이텀 노트, 클립온&프릭션 멀티펜, 간식 주머니, 약통, 케이스에 담긴 마우스의 구성으로 늘 존재한다. 가끔 이북리더기나 텀블러, 우산, 헤드폰 등이 들어가곤 한다. 전자기기 풀 세팅에 유선 충전기까지, 아이패드가 있는데 노트는 왜? 또 무게는 어떠한가. 노트북만 해도 2kg가 넘는다. 여기서 이 브런치북의 제목을 읽어보면 '나의 미니멀의 크기는'? 개뿔 완전히 맥시멀 라이프네! 하며 누군가 비웃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가방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최소한의 구성으로 자리 잡은 나에게 맞는 최소한의 구성이다. 시작하는 글에서 이야기했듯(나의 착오로 브런치북에는 포함 X) 이 시리즈는 나만의 미니멀의 크기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아래 정의에서는 '아주 적은' 보다는 '최소의'라는 정의와 알맞은 내용이다.
가방 구성의 목적 :
1. 추가 지출을 방지한다.
2. 어디서든 부족함 없이 작업할 수 있다.
먼저 무게가 미니멀한 것도 좋지만, 추가 지출을 방지하며 어디서든 펼쳐놓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가능케 하는 건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대학에 다니며 소소하게 디자인 작업을 하기도 하는 나의 특성상 노트북은 꼭 필요하다. 몸 가볍게 갔다가 집 들러서 가져오면 되잖아! 교통비 추가지출. 걸어서 가! 체력과 시간도 안녕. 바깥에서 작업하고 싶을 때 혹은 당장 필요한 작업이 생겼을 때, 혹은 학교에 남아 작업하고 싶을 때 등 노트북을 항상 갖고 있으면 무슨 작업이든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든 당장 시작해야만 하는 나의 성향상 더 그렇다. 심지어 맥북 프로와 함께라면 정말 무슨 작업이든 다 소화해 낼 수 있다. 주로 내장 트랙패드를 쓰지만 로지텍의 MX MASTER 3s 마우스도 늘 같이 있다.
아이패드도 제법 무겁지만, 빼놓고 갈 때마다 늘 필요한 일이 생긴다. 급한 일이 뭐가 있겠나 싶어 빼두고 가면 진짜 급한 일이 생긴다. 거참. 대학생이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굿노트로 문서를 보고, 필기하고, 노트북 대용으로 쓰는 것을 많이 봤는데 나는 프로크리에이트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판타블렛도 가지고 있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작업에 필요한 이미지를 그리기에는 아이패드만 한 게 없다.
외장하드는 몇 달 전 고정지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구글 드라이브 구독을 해지함과 동시에 구입했다. 무엇이든 때려 박아 정리할 수 있는 4TB이다. 파일 정리를 철저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과제물이나 미디 파일 등 큰 파일들이 제법 많아서 대빵 용량이 필요했다. 과하게 비싸지만 않다면, 디지털 관련 용량은 넉넉하게 정하면 제법 큰 이중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쿠폰을 알차게 사용해 8만 원에 샀는데, 구글 드라이브 2TB 가격이 지금은 월에 11,900원인 것을 감안하면 6개월 정도의 값에 두 배의 용량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장점으로는 이리저리 파일 옮길 일이 있을 때 드라이브보다 속 편하고 빠르다는 점, 대용량도 빠르게 저장할 수 있다는 점. 단점은 파일 손상 또는 통째로 분실할 우려가 있다는 점 (이중 백업으로 해결 가능). 구글드라이브 기본 15GB를 사용하며 보관용 서브 스토리지로 쓰려고 했는데, 파일을 찾을 일이 의외로 많기도 하고 장점 때문에 그냥 조심히 갖고 다니고 있다.
충전기도 필수템이다. 노트북과 아이패드가 있는 한 보조배터리로는 택도 없다. 발열현상을 싫어하기도 하고, 보조배터리를 따로 충전해야 하는 게 나에게는 더 스트레스이다. 우연찮게 폰과 보조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어 카페에 들어가거나 편의점에서 배터리를 사는 등의 추가지출을 방어할 수 있다. 콘센트는 요즘 웬만한 곳에 다 있기 때문! 주렁주렁 엉킨 케이블들을 매달고 다녀 본 결과, 노트북은 맥세이프 케이블로 충전하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65W 2 포트 충전기에 고속 C타입 케이블, 8핀 케이블 두 가지를 들고 다니면 모든 기기를 커버할 수 있다. 케이블을 줄이고 싶어 C타입으로 출시된 아이폰 15를 살까 하는 미친 생각도 해 보았지만 모종의 이유로 퇴보하여 아이폰 XR을 쓰게 된 이후로 군소리 없이 챙겨 다니고 있다. C타입으로 완전 통일이 머지않은 세상에서 애타게 8핀 충전기를 찾는 친구들에게 짠! 하고 빌려주면 뿌듯함은 덤. 애플워치는 집에서 충전하길 기대하는 것보다는 노트북 사용 시 선을 돌돌 말아 정리한 채로 옆에 꽂아두면 금방 충전된다. 굳이 비정품 휴대용 충전기를 구입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 외 노트와 펜, 간식 주머니, 립밤 또한 이중지출을 막아준다. 간식 주머니에는 크리스탈라이트 피치망고맛과 각종 집에 굴러다니던 사탕들이 담겨 있는데, 허전하긴 한데 돈 주고 사 먹고 싶은 게 없을 때(빈번한 일) 그리 내키지 않는 기분을 참고 하나 까서 입에 넣어주면 효과가 꽤 오래간다. 갑자기 단 음료가 마시고 싶을 때에도 크리스탈라이트를 물에 타서 마시면 저칼로리에 아마도 불만족스러웠을 지출 방어까지 완료! 립밤은 가끔 입술이 찢어질 것 같아 새로 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맘에 들지도 않는 립밤이 여러 개가 되어 허망한 기분을 느낀 뒤 꼭 챙겨 다니고 있다. 그 외 화상 회의를 하거나 노래를 들을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이어폰, 약을 빼먹어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는 6 분할 약통까지, 끝! 화장은 거의 안 하거나 집에서 하고 오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립스틱 하나만 갖고 다닌다.
여기까지 나의 등딱지와 다름없는 가방을 세팅하고 있는 기준과 여러 이야기들을 해 보았다. 대학생 치고는 사치스럽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 물건들을 정말 가격에 대한 후회 없이 알차게 활용하고 있음을 자부할 수 있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과 직결되기에 성능, 용량 무엇이든 어딜 가도 부족함이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공간 정리도 그렇듯, 뭐든 딱 맞추기보다는 널널한 여유 공간을 두어 언제든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왜 미니멀해질 수 없는 거냐며 속상해한 적도 있지만, 나의 라이프스타일에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절대적인 양보다는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 그에 맞게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다. 백팩을 하나만 사용하기에 정리하기도 편하고, 어딜 가든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이상 <나의 미니멀의 크기는> 첫 번째 이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