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고, 취향추적앱
메일이 도착했다.
제목 < 파일명: 응급의료정보카드 >
2개월 전, 1308호 병실.
병원 이름이 새겨진 뻣뻣한 환자복을 건네받았다. 금식이라는 커다란 두 글자가 쓰인 종이와 함께.
몸에게는 물 한 모금조차 허락되지 않았지만 피를 가져가는 일엔 제한이 없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하루 동안 1킬로그램을 빼게 해 준 두 검사를 시작했다. 늘 속 마음을 감추며 사는 배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조영제 주사를 맞았다. 온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숨을 참았다가, 내쉬었다를 반복했다. 보호자가 되어 조용히 기다려주던 남색 슬리퍼에 몸을 기댔다. 작지만 포근한 위로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손목에 걸린 이름 세 글자와 8개의 숫자를 단발머리 그녀에게 내밀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굳게 닫힌 문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목에 걸려있던 세 글자가 울려 퍼지자,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10부터 거꾸로 세세요."
'10, 9, 8...'
"일어나세요."
3초 만에 위내시경이 끝났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병실로 향했다. 침대 앞에 걸려 있던 금식종이가 사라졌다.
오후 12시.
드디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식판이 나타났다. 신장식단이 나왔다. 아무런 간이 되어있지 않았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그릇 하나에 간장이 담겨 있었다. 저염식을 위해 간장은 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선 양배추볶음을 한 입 먹었다.
'.. 이건 아니야...'
밥그릇을 뺀 모든 그릇에 톡톡 간장을 뿌렸다. 허겁지겁 모든 그릇을 비웠다. 아무래도 저염식에 실망할까 봐 금식을 시킨 게 확실하다.
다음 날 오전 9시.
마스크를 쓴 채 머리를 단정히 묶은 교수님이 병실 문을 열었다.
"어제 검사한 CT랑 위내시경 결과가 나왔습니다. 간경화입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갑자기 진행된 것으로 보이진 않고, 서서히 진행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식도정맥류가 발견됐습니다."
그 이후,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낯선 단어들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마음이 듣기를 거절해서 인지.
의사 선생님의 뒷모습이 사라졌을 때.
입술과 함께 꾹 다물었던 눈물이 흘러내렀다. 옆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 들었다. 눈과 코를 꾹꾹 눌렀다. 두루마리를 세 번 풀자, 닫혀있던 입술과 눌러뒀던 마음도 풀려 버렸다. 조용한 병실에 울음소리만이 가득히 퍼졌다. 몇 번의 긴 숨을 내쉬었지만, 열려 버린 마음은 좀처럼 닫힐 줄을 몰랐다.
간경화.
간 조직이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굳어간다.
식도정맥류.
제 역할을 잃어가는 간. 간으로 향하던 혈액마저 방향을 잃는다. 갈 곳을 잃은 혈액은 가지 말아야 할 식도로 향하고 말았다. 그렇게 작은 식도정맥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부풀어 오른 정맥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과다출혈도 위험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혈 자체가 어렵고 까다로운 수술이라는 것이다.
나는 상상했다.
길을 걷다, 갑자기 피를 토하며 목을 부여잡은 나를.
휴대폰을 더듬더듬 찾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장면을.
'결국 그렇게 죽는 걸까. 생각보다 일찍 죽을지도 모르겠네.'
진단을 받은 후, 일주일 내내 밤마다 울다 잠이 들었다. 어제처럼 베개가 축축해진 밤. 불 꺼진 방문을 열고 용이가 들어왔다. 말없이 그는 내 옆에 누웠다.
"왜 울고 있어."
망설이다 대답했다.
"나 죽으면 어떡해."
"네가 왜 죽어."
"식도정맥류말이야. 터져서 죽을 수도 있대."
그는 잠시 바라보더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머리를 꾸짖었다.
장난기 가득한 그의 목소리 위에 위치추적앱을 깔자는 말을 올렸다.
"만약 내가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 말이 없으면 나를 찾아와야 해."
그는 장난기 없는 표정으로 위치추적 네 글자를 천천히 검색했다.
위치추적 앱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 후, 한참을 다시 생각했다. 응급실에 갈 상황을 대비해 응급의료정보카드를 만들기로 했다. 한 블로그에 <응급의료정보카드> 형식 파일을 보내준다는 글을 보았다. 댓글에 메일 주소를 남겼다. 그 뒤로 몇 번이고 메일함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메일이 오늘 도착했다. 그리고 연락이 느린 그가 버거킹에 있다는 사실도 함께 도착했다.
그가 햄버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씩, 오래오래 알아가고 싶다.
위치추적 앱이.
그의 취향을 알아가는 앱으로만 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