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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

으로 행복을 사 던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팔더라.

by 이루고


챗지피티로 어린 시절 사진 하나를 그림으로 바꿔보았다.

'이 사진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는데'

볼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그리운 걸까.

그때가 대체 어땠길래.


병이 없던 시절이라서?

아님, 걱정 없이 뛰어놀던 시절이라서?


그림 속 아이의 얼굴에는, 어떻게 해야 사진이 예쁘게 나올까 하는 생각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어떤 포즈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한다.

계산기를 두드린 결괏값은 똑같은 표정에, 어색한 몸짓으로 가득한 사진첩.

왜 이렇게 모든 것이 고민이고 걱정인 걸까.


어렸을 땐. 참 많이 웃었다.

그리고 참 많이 울었다.




일곱 살 때.

작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짙은 갈색빛이 감도는 둥근 밥상이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식사 시간에만 등장하는 그것 위에는 군만두가 소복이 쌓인 접시가 놓여 있었다. 노릇노릇한 노란 빛깔 위로 젓가락이 바쁘게 오갔다. 내가 못 들은 걸까. 아님 내게 말하지 않은 걸까.


거실을 지나쳐 안방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선 펑펑 울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과 벌어진 입은 당장이라도 엉엉 소리를 내며 울 모양이었지만, 혹여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음소거만 유지한 채 엉엉 울어댔다.

왜 나만 빼놓고 먹는 걸까. 왜 아무도 내게 먹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걸려있던 두루마리 휴지로 한참 동안 코를 풀었다. 울지 않으려 입을 꾹 닫고 선 문을 열고 나왔다. 나오는 순간, 저 멀리 비어져가는 접시가 보이자 또 눈물이 났다. 세 번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서야 눈물이 멈췄다.


나만 쏙 빼놓은 군만두 파티가, 참 서러웠다.




열 살 때.

일찍 수업이 끝나던 수요일이면 꼭 동네에 있는 작은 빵집에 들렀다. 급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켜 주던 오르막길을 올랐다. 숨을 크게 한 번 내뱉고선,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갈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어이, 오늘은 늦게 왔네!" 하고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소보로빵 하나랑요,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고선, 하얀 유니폼을 입은 남자 사장님을 올려다봤다.


빨간 책가방을 내려놓고 분홍색 토끼가 수 놓인 지갑을 꺼냈다. 천 원짜리 한 장,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설레는 마음으로 그에게 건넸다. 왼손에 소보로빵을 쥐고 선, 사장님을 뒤따라 문 밖으로 향했다. 가게 앞 계단 위에 놓여있던 아이스크림 기계 앞에 섰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사장님의 손길을 바라봤다. 하얀 행복이 세 바퀴 돌며 내려앉았다. 오른손에 꼭 쥐고서 내리막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아이스크림에 집중해야 하니까.


학교 수업은 마쳤고, 저녁시간은 아직 한참 남은 시간.

애매한 시간에 들르는 이곳은 나만의 아늑한 비밀 공간이었다.

지금은 카페로 바뀌어버린 그 빵집.

그곳을 지나칠 때면, 계단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는 내가 보인다.


하루 용돈 천 원으로, 참 행복했다.




쉽게 행복해하고 쉽게 슬퍼했던 그 시절.

시절의 '행복'에는 반대말이 없었다.

불행이라는 단어는 몰랐으니까.


행복하는 데에도, 슬퍼하는 데에도.

조건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웃음이 나오니까 행복했고

그저 울음이 나오니까 슬펐다.

그리고 웃고, 울으면 그렇게 끝이었다.


지금은 행복이 언제 끝날지 몰라 겁을 내고

불행이 영원할까 봐 두려워한다.

행복에 조건을 찾고, 감사함을 덧붙이고.

불행에 이유를 찾고, 이겨내려 애쓴다.


가끔은, 그때처럼

아무 조건도, 이유도 없이

그냥 웃고 울고 싶다.


그런데 말이야.

그 모든 조건과 이유.

어쩌면, 내가 만든 거였는지도 몰라.


행복에 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불행이 설명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면 되는 거야.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살았고
그게 참 잘 사는 방법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

지금의 나도, 이제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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