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야자키현서 규모 5.8 지진…"원전은 안전"
휴일 아침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읽어 본 기사의 제목이다. 10월 2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에서 규모 5.8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기사다. 기사 끝 무렵 진원 근처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에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정말 원전이 관심사이긴 한가 보다. 다른 곳은 놔두고, 원전이 지진에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해 기사에 올렸다. 과거 몇몇 기사들도 이 기사의 패턴과 비슷하다. 지진 발생 소식을 전한 후 그 진앙 근처 원전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기사의 패턴이 만들어진 배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원전이 유독 지진에 취약한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지진을 두 번 겪어봤다. 한 번은 10여 년 전 일본 동북(東北) 지역으로 출장을 갔을 때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자고 있는데,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잠시 뒤 창문 흔들림이 멈춰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TV 뉴스에서 전날 밤 약한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내가 처음 겪은 지진은 잠깐 잠을 깨운 성가신 해프닝 정도였다.
두 번째 지진은 달랐다. 두 번째 겪은 지진은 2016년 9월 경주에서였다. 당시 나는 경주의 한 대학에서 근무했다. 그해 9월 12일 저녁 규모 5.1과 규모 5.8의 지진이 40 여분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 규모 5.8은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지진 중 가장 큰 규모다.
그때 나는 경주에 사람과 차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지진이 일어나자 경주에 있는 모든 사람과 차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평소 경주 시내는 출퇴근 시간에도 10분 이상 지‧정체되는 곳이 없었는데, 그때 우리 대학 근처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지진은 그날 하루로만 그치지 않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진이 이어졌다. 수업하던 중 지진이 일어나면, 학생들과 운동장으로 대피해야 했다. 한밤중에 지진이 나면, 침대에서 재빨리 일어나 집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지진은 낮보다 밤에 더 무섭다. 잠자고 있는데 지진이 나면 특히 그렇다. 몇 차례 이런 경우를 겪다 보니, 지진 대응 요령을 터득했다. 동료 교수들끼리 밥을 먹으며 각자 터득한 지진 대응 요령을 공유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잠자기 전에 현관문 앞 조명을 항상 켜놨다. 어두컴컴한 한밤중에 나갈 곳을 잘 찾을 수 있게. 한 동료 교수는 현관문 앞에 물 등 비상용품을 넣은 백팩을 놔뒀다고 한다. 지진이 나면 그것만 얼른 들고 나올 수 있게. 옆에 과의 한 선배 교수는 저녁 무렵 여진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퇴근 시간 후 여진이 지나갈 때까지 운동장에서 계속 걸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몸을 피곤하게 하면 지진 걱정 없이 잠도 푹 잘 수 있어 좋다고.
나는 경주 지진을 겪으며, 내가 사는 집과 근무하는 대학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경주에는 월성원전이 있다. 내가 근무하던 대학과 직선거리로 불과 3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원전에 관심이 없었다. 그때 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내가 사는 곳과 대학 건물의 안전에 온 신경이 가 있어서, 원전에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었다. 실제 월성원전은 그 지진에 멀쩡했다.
우리나라 원전은 규모 6.5~7.0 이상의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내진(耐震) 설계를 한다. 다른 나라도 그 나라의 법령에 따라 원전 내진설계를 한다. 원전은 지구상 가장 튼튼한 구조물이다. 그런데도 지진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다른 건물은 놔두고, 원전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에 그런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지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지진 후에 발생한 쓰나미 때문에, 원전 각종 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원 공급계통이 침수되면서 일어났다. 후쿠시마 원전보다 진앙에 더 가까운 곳에 오나가와(Onagawa) 원전이 있다. 그런데 이 원전은 당시 지진과 쓰나미에 멀쩡했으며, 그 주변 주민 2~300명은 쓰나미를 피해 오나가와 원전 강당으로 대피하기도 하였다. 그 지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원전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ikiz.com/wiki/Onagawa_Nuclear_Power_Plant).
원전 안전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지진 발생 시 원전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것처럼 독자들을 오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나라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지진이 났을 때, 지진파가 원전만 찾아가서 흔들어대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의 모든 건물에 다 영향을 미친다. 지구상에서 내진설계를 가장 잘 돼 있는 원전이 파손될 정도면, 그 지역 건물 중 멀쩡한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건물은 원전처럼 내진설계가 잘 돼 있을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허영 위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에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 전국 건축물의 내진율은 13.2%밖에 안 됐다. 즉, 우리나라 건축물 10개 중 1개만이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했거나 구조 보강을 통해 내진성능을 확보한 것이다. 대부분 건물은 내진성능이 부족하여, 대형 지진이 나면 건물이 무너지고 대형 화재가 발생해서 큰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다는 의미다. (출처: https://www.ikld.kr/news/articleView.html?idxno=241470)
왜곡된 인식과 주장은 우리 사회 재원의 왜곡된 분배를 가져온다.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오래된 학교 등 다중 건물의 내진성능을 시급히 보강하는 데 돈을 최우선적으로 써야 하는데, 굳이 보강을 안 해도 될 원전의 내진성능을 보강하는 데 돈을 쏟아붓게 한다.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균형된 시각과 판단이 필요한 듯하다.
원전도 좋지만, 우리나라 다른 건물에도 신경 좀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