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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Feb 04. 2023

밤, 응어리진 미련

밤나무 이야기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께서는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만평 정도의 산을 사셨다. 그곳에 조상의 묘도 모시고 잡목을 베어 내고 밤나무도 심으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밤을 딸 수 있는 높이와 힘을 확보했을 때 그 산에는 밤을 따기 어려운 이유가 밤 가시 마냥 사방에 촘촘하게 돋아 있었다. 난방이 기름 보일러로 대체 되면서 나무를 자를 이유가 없어져 산에는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 밤나무는 더 높이 자라서 장대로도 밤이 열린 곳까지 높이가 닫지 않았다. 토종 밤이라 알 크기가 작았고 수확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마저도 벌레를 먹은 밤이 절반을 넘었다. 어느 순간 밤 수확을 포기해 버렸고 동네 분들이 소일 거리로 밤을 주워 가곤 했다. 밤을 제대로 따보지 못한 아쉬움은 해소되지 않은 채 시간 속에 묻혔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녹색의 껍질을 살포시 열어서 속모습을 보여주던 빛나는 갈색의 밤톨은 고스란히 소년의 뇌리 속에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각인되었다.


연곡리 밤나무

연곡리 집을 처음 보던 날 마당 한 켠 비탈진 곳에 터를 잡고 있던 늙은 밤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내는 주목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이 나무로 인하여 낮 설음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 주는 생경함보다는 익숙함과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 밤나무가 풍겼던 어떤 인상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층으로 올라가 창문 밖을 바라보니 이 나무의 상층부가 다 보였다. 나무가 나이를 들어 가면서 중간에서부터 상부까지의 몸통 부위는 상실되고 아래 부분의 가지 들로만 연명하고 있어서 나무 높이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무는 내가 어렸을 적 밤을 따기 어렵게 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없었다. 집안에 있었고 높이도 낮았다. 또한 이 나무는 어릴 적 친구네 집 앞마당에서 자라던 나무를 닮았다. 그해 가을 앞 마당 밤나무는 꽤 많은 밤을 맺었다. 떨어진 밤을 주워 보니 예상대로 도토리 크기의 두 세배 정도 크기의 토종 밤이었다. 그나마 벌레가 많이 먹지 않아 크기가 좀 큰 밤 위주로 주어 모아 보았다.  한 되 정도가 모였을 때 바비큐 그릴에 주변의 마른 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우고 밤을 구워 보았다. 크기가 작아서 들인 공에 비하여 먹을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군밤 만들기는 포기했다. 

율곡리

연곡리로 이사를 온 후에 주변을 산책하면서 집들과 지형과 나무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마을 이름의 기원이 되었으리라 추측할 할 수 있는 연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연꽃이 자랄 수 있는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물 웅덩이나 습지도 없었다. 아마도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연꽃이 피는 마을이었으나 농지 개간이나 집들을 지으면서 사라지지 않았나 추정해 보았다. 연꽃 대신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표적인 식눌은 밤나무 였다. 밤나무들은 대부분 한계치까지 자라 있었고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과거 1970년대나 1980년대 집중적으로 심어졌다고 보여졌다. 발길 닿는 곳 어디에서도 밤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이름을 연곡리에서 율곡리(栗谷里)리 바꾸어야 할 듯싶었다. 집 뒷산 나지막한 언덕에는 밤나무가 집중적으로 자라고 있는 군락지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길 거기 밤은 토종이라서 상품성이 없고 그러다 보니 방치되어 있어서 마을 주민들 아무나 밤을 주워 간다고 했다. 


가을이 되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에너지 삼아 후대를 품은 열매를 만들어 세상에 내 놓는 시기다. 토요일 아침 일찍 뒷산 밤나무 군락지에 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다녀가지 전에 먼저 훑어 보아야 밤 새 떨어진 밤을 그나마 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 했던 바대로 였다. 반전은 없었다. 밤나무들은 우람한 덩치와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으나 그 들의 2세를 품고있는 열매들은 볼품이 없었다. 하늘 높이 치고 올라가 햇빛은 많이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 에너지로 벌레들의 침투는 막지 못했다. 밤의 반 이상이 벌레가 먹어 있었다. 

내가 밤나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추억들은 성장기의 따스함과 울먹거림을 유발하는 그리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 보다는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의 허기, 욕심껏 밤을 따보지 못한 아쉬움, 초등학교 시절 내 주먹만한 크기의 밤을 맺던 친구네 밤나무에 대한 부러움 등이 혼재되어 있는 식어버린 비빔밥 같은 존재였다. 이 비빔밥에는 재료가 넉넉하게 들어가 있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 차갑게 식어 있었다. 또한 부족함 속에서도 맛을 내줄 수 있는 참기름마저 없었다. 


미련을 날리다

비록 크기는 작았으나 집 앞의 밤나무와 뒷산 밤나무 단지에서 벌레가 먹지 않고 크기가 그나마 큰 밤들을 열심히 주어 모았다. 주말마다 한 되 이상을 주었다. 오후에는 따스한 햇빛이 들어 오는 거실에 앉아 칼로 껍질을 벗겨냈다. 까는 시간과 노력 대비 얻는 밤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먹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마디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밤을 까면서 어릴 적 추억을 반추하고 가을 정취를 즐기고자 했다. 아내는 그 밤으로 밤밥을 지었다. 간장, 깨, 참기름, 고춧가루, 파 등을 넣어 양념장도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밤밥에 양념장을 넣어 먹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달콤하였으며, 따뜻했고, 참기름이 듬뿍 들어가 있어 고소했다. 주변은 화려한 가을 단풍에 둘러 쌓여 있었다. 양껏 먹었다. 남은 밤은 냉동실에 저장했다가 그 해 가을에서 겨울까지 밥 지을 때 마다 넣어 먹었다. 


밤의 추억들은 어릴 적 척박한 땅에 심어졌다. 싹은 텄으나 튼튼한 뿌리는 내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싹은 미련으로 변질되어 자랐다. 30년을 손가락에 박혀 잘 빠지지 않는 밤가시 마냥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잊지 않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곤지암에서의 밤밥 식사는 응어리진 미련들을 홀가분하게 떠나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미르마을로 이사 온 후에는 더 이상 밤을 찾아 헤매는 일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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