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경심전 Feb 05. 2023

커피와 엘피

즐커피와 엘피는 닮았다

커피와 엘피(LP)는 닮은 점이 몇 개 있다. 탈레랑이 말했듯이 커피는 악마처럼 검다. 엘피도 악귀만큼이나 검다. 또한 탈레랑은 커피는 천사같이 순수하고 지옥처럼 뜨겁고 키스처럼 달콤하다고 했다. 이 문장의 주어를 커피에서 엘피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인리히 아콥의 말로 정리하면 한 잔의 커피와 한 장의 엘피는 경이로운 관계의 집합체이다. 탈레랑이 미처 말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커피는 부드러움 속에 예리함을 숨겨 놓고 있다는 점이다. 엘피도 따듯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주긴 하지만 일부만 진실이다. 고역의 날카로움을 드러낼 때는 그 예리함에 서늘함을 느끼곤 한다. 커피의 맛은 오미 그중에서도 단맛 쓴맛 신맛의 조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커피 맛을 분석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겠지만 맛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면 각각의 맛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귀도 음악을 자주 듣게 되면 분석력이 높아진다. 개별 악기 소리가 관현악속에서도 구분이 된다.


 커피와 엘피는 다르다
  다른 면이 있다면 엘피는 정신을 안정시켜 주는 반면에 커피는 정신을 각성시킨다는 점이다. 이런 상극적인 성질은 시간대를 잘 맞추면 보완이 된다. 저녁에 엘피로 재즈를 듣다 보면 정신은 수면의 바다 밑으로 쉽게 가라앉는다. 다음날 출근을 할 때면 저녁 커피는 금물이지만 금요일 저녁에는 검은 커피 한잔이 하얀 밤을 지새우기에 제격이다. 최근에 엘피 발매가 활발하지는 못하지만 옛 추억을 되살려 줄 정도의 빈도로 출시는 된다. 인터넷 장터에서 원하는 중고 엘피를 사는 것도 흥분되지만, 새 앨범을 사면 젊은 시절 레코드 가게에서 비닐로 포장된 빛나는 앨범을 받아 들었을 때의 감성이 돼살아나서 즐겁다. 집에 가지고 와서 비닐을 개봉했을 때 나는 새 엘피의 독특한 냄새를 맡는 느낌도 좋다.
  엘피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지만 커피는 음료 시장에서의 지위는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다. 점심 식사 후 테이크 아웃 커피 한잔 들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것이 신세대의 상징이 되었다. 최근에는 7080 세대도 이 트렌드에 동참한 듯하다.

이광조의 엘피로 된 새 앨범을 한 장 샀다. 단순한 엘피 한 장을 산 게 아니다. 추억과 냄새와 새 비닐의 촉감이 덤으로 왔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후 내 곁에 멀리 있었던 베테랑이 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왔다. 제대로 우려낸 커피 한잔에 어울리는 관록이 우러나온다. 멋있다.


과정이 즐겁다
  날로그를 운용하다 보면 ‘과정의 즐거움’에 대해서 알게 된다. 엘피를 재킷에서 꺼내서 천으로 조심스럽게 먼지를 닦아 낸다. 턴테이블에 올린 후, 음악이 녹음된 첫 지점에 맞춰 톤암을 이동한다. 제대로 이동시켰는지 눈으로 다시 확인한다. 톤암의 레버를 내려 카트리지가 엘피에 내려앉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본다. 카트리지가 반동으로 살짝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앰프의 볼륨을 서서히 올려 본다. 엄숙한 의식을 치렀다. 의식은 과정을 통하여 진행된다. 엘피로 음악을 재생하기까지 음반을 직접 만져보는 ‘감촉의 정감’을, 종이와 비닐의 오래된 냄새를 맡아보는 ‘향수의 정감’을 느껴볼 수 있다. 또한 엘피가 팽이처럼 돌아가는 모습과 그 위를 흔들흔들 춤추며 돌고 있는 카트리지를 지켜보는 ‘시각의 정감’이 있다.

원두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시다 보면 역시 ‘준비 과정의 즐거움’에 대해서 알게 된다. 원두커피와 그라인더를 장에서 꺼낸다. 물을 전기 포트에 넣고 전원을 올린다. 원두커피를 용량에 맞추어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라인더 속에 넣는다. 그라인더의 손잡이를 돌린다. 커피의 저항이 기분 좋게 느껴지며 손잡이가 돌아간다. 갈아진 커피를 드리퍼 안에 넣는다. 그동안 뜨거운 물이 끓고 있다. 물을 조금만 커피 위에 붓고 30초를 기다린다. 숙성의 시간이다. 정성을 다하여 그리고 연습한 대로 원을 그리며 물을 붓는다. 엄숙한 의식을 치렀다.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기까지 여러 가지 기구들을 만져보는 ‘접촉의 쾌감’을, 원두를 직접 갈 때 들려오는 소리와 손에 전달되는 떨림을 통하여 ‘분쇄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또한 분쇄된 원두 가루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의 쾌감’을 느껴볼 수 있다. 


자연과 함께하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기본기를 갖춘 아날로그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하면 디지털 사운드와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과 원숙함을 지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원두커피를 추출하면 인스턴트커피가 범접할 수 없는 맛과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험은 도시의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전원생활을 하면 도시에서의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확장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다. 서울에서의 음악 감상은 아파트에 갇혀 있다. 전원에서 오디오를 틀면 오디오룸이 대자연 속으로 확장된다. 내 앞에 펼쳐진 산과 들이 콘서트 홀이다. 바람 소리와 새들의 지적임과 개울 물 흐르는 소리가 오디오가 재생하는 음악 속으로 들어온다. 생기와 활력을 더해 준다. 엘피 소리와 자연의 소리는 닮았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위안을 준다. 두 소리가 합쳐지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원두커피 한잔을 내려 마당으로 나간다. 자연 속으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가 자연의 생기를 느껴 본다. 아침의 따스한 햇살 속에 새들이 지저귀고 산들바람은 온몸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나간다. 색이 있다면 녹색일 것으로 생각되는 피톤치드가 온몸을 감싸고 눈이 시린 초록의 정원이 시신경을 마비시키려 한다. 오감을 동원하여 커피 한 모금을 들여 마셔 본다. 커피 속으로 자연의 향기가 녹아 들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자연의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을 들여 마시는 듯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의 명품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