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잠이 많은 아이였다.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그런 체질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잠을 조절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잠이 오는 시간을 미리 예상할 수 없었고, 버티려고 해도 갑자기 힘이 빠지듯 가라앉는 순간이 늘어났다. 어떤 날은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하다가도 누워야 했다.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뚝 꺼지는 느낌이었다.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는 과정이 아니라, 뚝 아래로 떨어지듯 가라앉았다. 몸이 스스로 전원을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수면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충분히 잤다고 생각해도 회복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잠에서 깨어난 뒤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머리는 맑아지지 않았고, 몸은 다시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날은 오래 잠들었고, 어떤 날은 짧게 끊어 잠들었다. 수면의 길이와 상태 사이에도 뚜렷한 기준은 없었다. 많이 잔다고 해서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고, 적게 잔다고 해서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니었다.
내 몸은 오래된 휴대폰의 배터리처럼 반응했다. 어느 순간 예고 없이 전원이 꺼졌다. 배터리 잔량이 숫자로는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사용 시간과는 맞지 않았다. 조금만 사용해도 급격히 떨어졌고, 어떤 날은 멀쩡해 보이다가도 갑자기 꺼졌다.
수면도 비슷했다. 얼마나 잤는지가 아니라, 언제 꺼지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깨어난 뒤에도 충분히 충전된 느낌이 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은 적이 있었다. 수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수면이 단순히 잠을 못 자는 문제인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았다.
이 변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율신경이라는 가능성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수면 역시 의식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영역이었고, 몸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증상들과 닮아 있었다. 확정된 원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가능성을 결론으로 두지는 않았다. 다만 하나의 연결 지점으로 남겨두었다.
이 변화가 우울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수면은 감정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기분과 무관하게 갑작스럽게 꺼지는 느낌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이 수면을 감정의 결과라기보다, 몸의 반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의 수면은 잠이 드는 게 아니라, 몸이 강제로 멈추는 것에 가깝다.
잠이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날에는 버티지 않고 바로 멈춘다.
잠드는 시간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몸이 내려가는 신호가 보이면 그 흐름을 따르는 쪽을 선택한다.
기상 후에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몸이 깨어나는 시간을 충분히 둔다.
수면 시간보다 깨어난 이후의 상태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