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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텔 Oct 30. 2023

상실 앞에 선 우리의 미숙한 사랑

<너와 나>를 꼭 다시 보고 싶었던 일요일

※영화 <너와 나>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건, 특히 국민 전체가 아는 큰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큰 리스크를 진다. 모두의 기억과 시선이 얽혀 있는 소재에 감독의 특정한 시선을 제시하는 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지만서도, 결국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너와 나>는 이로부터 자유로운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세미와 하은의 풋풋한 마음은 그들이 얄궂은 운명의 피해자여서가 아니라 그저 그들 자체이기에 순수하게 아름답다. 요컨대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떼어 놓고 <너와 나>를 바라보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너와 나>는 애써 세월호를 떼어놓고 보려 하더라도 난연히 빛난다. 그럼에도 그 노력의 끝에는, 다시금 익숙한 흉터를 문지르는 우리가 남는다.


<너와 나>는 하은과 세미라는 두 고등학생 소녀의 하루를 그린다. 수학여행 전 날, 세미는 하은이 풀밭에 엎드려 죽은 채 등장하는 꿈을 꾼다. 다리를 다쳐 수학여행에 함께할 수 없는 하은이 애써 불안한 세미는 꼭 같이 가야 한다며 하은에게 떼를 쓰고, 겉으로는 쾌활한 척 하지만 반려견의 죽음으로 마음이 심란한 하은은 세미에게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긴 하루 내내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는 둘은 각자의 간질간질한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애쓴다.


아직은 타인의 감정을 진심으로 배려하지 못하는 세미에게 꿈을 통해 겪은 상실의 두려움은 이지적인 사랑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어느 오전의 그 꿈은 세미가 겪는 하은의 부재로 시작되지만, 이어 하은이 겪는 세미의 부재로 이어진다. 모든 친구들이 사라진 교실에서, 세미의 납골당 앞에서, 세미가 없는 버스 창가에서. 각자가 없는 낯선 풍경을 바라본 뒤 세미는 마침내 지금을 붙잡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미숙한 손길로 서로를 할퀴기도 하지만, “오늘 꼭 고백을 해야겠다는” 세미의 간절한 마음이 그녀를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너를 알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쳐, 하루 사이 훌쩍 커버린 세미는 하은에 대한 진실된 이해에 기어코 도달한다. 아끼는 사람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은 따뜻한 욕망, 그의 빈자리를 상상하기만 해도 걷잡을 수 없이 덮쳐오는 슬픔, 처음 겪어보는 그 모든 감정에 사랑이라는 온전한 이름을 달아주며.



세미는 죽음을, 그들의 세상 바깥의 무언가를 궁금해한다. 이들의 작은 세계에는 아직 현실의 냉혹함과 절망적인 운명의 고통이 침공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란 고작 학교 안팎에서 마주하는 또래 친구들과,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중 영화관에서 발각되는 선생님과, 부담스럽게 집착하는 찐따 대학생이 전부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그 세계가 전부여서, 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질 만큼 수없이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포옹한다. 이름 없는 교복 무리를 조망하는 수많은 쇼트들을 통해 카메라는 끈질기게 그들의 손바닥만한 마을 전체를 담아내려 한다. 하루아침에 통째로 증발해 버릴 수 있는 너무나도 연약한 세계라는 걸 미리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싱그러운 봄의 환희에 춤추듯 화면 가득히 번지는 빛에 어질어질해진다. 자연광을 받는 하은과 세미의 말간 얼굴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투명하고 아름답다. 어쩌다 소녀들의 어깨 뒤로 역광이 비칠 때면 빛이 이들을 덜컥 잡아먹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된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내러티브도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꿈같다는 인상을 자아낸다. 이 희뿌연 꿈에서 깨는 일이 평소보다 유독 어렵다. 미처 전하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은 창 너머로 날아간 앵무새의 입을 타고 퍼져가겠지만, 말보다 거대한 마음을 온전히 전해낸 밤을 보며 우리는 세미의 투박한 용기를 사랑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 사랑을 평생 기억할 하은을 부러워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익숙한 흉터로 남을 그 밤의 입맞춤이 그녀를 끝까지 버텨내게 할 행복한 꿈으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짝이는 청춘의 아픔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이 영화를 아낄 이유가 충분하지만, 우리는 애써 이야기의 뿌리를 외면하려는 노력에 번번이 실패한다. <너와 나>는 세월호 참사와의 연관성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지만 동시에 대놓고 부각하지도 않는다. 안산역, 버스 안 라디오, 수학여행이라는 최소한의 힌트만으로도 우리에게 공동체적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행여 상처 입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절제된 표현 덕분에 영화의 감동은 특수한 사례가 남긴 상흔에 국한되지 않고 더 멀리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지속된 사회적 부검에 따른 피로와 악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대신 <너와 나>는 살아남아 죄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근본적인 위로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초점은 사건 발생 후에 난립하는 메시지의 파편들이 아닌 사건 이전의 일상성에 맞춰져야만 한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는 평범하고 안온한 나날을 되찾는 일에, 건네지 못한 한 마디를 기어코 시간 뒤편으로 날려 보내는 일에 맞춰져야만 한다. 몰랐기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사랑이, 알았더라면 얼마나 탐스럽게 영글 수 있었을지에 대해. 동화 같은 꿈 덕분에 세미가 하은을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줄 수 있었던 것처럼, 한 편의 꿈같은 영화가 남겨진 우리의 오늘을 다정히 안아준다.


10월 27일에 GV 현장에서 <너와 나>를 처음 보고, 무리를 해서라도 이틀 뒤 꼭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29일, 서울광장을 찾은 후 광화문 씨네큐브까지 걸어 올라갔다. 다시 만난 하은과 세미의 얼굴은 여전히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그렇지,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지. 그 어떤 메시지보다 선행하는 것은 위태롭게 점멸하는 어느 봄날의 빛, 꿈처럼 번져간 얼굴들을 기억할 공간을 스크린에 펼쳐내는 지극히 영화적인 소임이었다. 오로지 이것만은 우리가 언제고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부끄럽고 고마웠다. 다른 이야기는 말고, 왜냐고도 묻지 말고, 기억하고 안아주는 거, 그저 그것만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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