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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Apr 07. 2024

252. 목욕하기 좋은 날








































어릴 때부터 솜인형을 좋아했다.

귀엽게 생긴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보들보들한 털과 말랑말랑한 몸통이 주는 포근함이 좋았다.

상대적으로 바비 인형은 잘 가지고 놀지 않았다. 그려진 눈도, 나일론 섬유로 만들어진 머릿결도, 구부러지지 않던 팔과 다리와 살구색의 고무 피부도 나에게는 어딘가 좀 무섭게 느껴졌었다. 같은 인형이지만 같지 않다.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낸 인형일지라도 나에게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처럼.


햄의 엉덩이에 달려 있는 그 하얀 고리는 아마도 진열대에 걸기 위해 만들어진 고리였던 듯하다.

나는 동네 잡화점에서 각기 다른 동물들 사이에 끼어 있던 유일한 햄스터 햄을 만났지만 어딘가에서는 햄과 똑같은 모습을  인형들이 진열대에 쭈욱 걸려 있었을 것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많고 많던 햄의 형제들 중에 햄이  마트로 보내져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회사를 거처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함께했던 을 떠올린.


돌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신기한 뉴스를 보았다.

누군가의 애정으로 곱게 단장하고 있는 돌의 모습은 내 눈에도 귀여워 보였다.

돌을 분양하시는 분이 반려돌의 장점으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매력이라고 하셨다.

애정을 가진 대상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 마음은 십분 공감하지만 나의 햄을 돌아보자면,

나는 햄이 나와 같이 나이를 먹는 것이 좋다. 탱탱하던 햄도 쭈굴쭈굴해진 햄도 사랑스럽다.

그 마음의 대상이란 사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것이 인형이든 돌이든 햄스터이든 무엇이 상관이겠는가.

유일한 것과 유일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과정이 그 어떤 비교도 잣대도 평판도 무색하게 만들 텐데.


봄날의 햇살같이 포근하고 귀여운 존재들이 널린 세상이다.

쭈굴쭈굴해지는 마음도 함께 잘 빨아 널고 싶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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