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솜인형을 좋아했다.
귀엽게 생긴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보들보들한 털과 말랑말랑한 몸통이 주는 포근함이 좋았다.
상대적으로 바비 인형은 잘 가지고 놀지 않았다. 그려진 눈도, 나일론 섬유로 만들어진 머릿결도, 구부러지지 않던 팔과 다리와 살구색의 고무 피부도 나에게는 어딘가 좀 무섭게 느껴졌었다. 같은 인형이지만 같지 않다.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낸 인형일지라도 나에게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처럼.
햄의 엉덩이에 달려 있는 그 하얀 고리는 아마도 진열대에 걸기 위해 만들어진 고리였던 듯하다.
나는 동네 잡화점에서 각기 다른 동물들 사이에 끼어 있던 유일한 햄스터 햄을 만났지만 어딘가에서는 햄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인형들이 진열대에 쭈욱 걸려 있었을 것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 많고 많던 햄의 형제들 중에 햄이 그 마트로 보내져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회사를 거처 세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함께했던 햄을 떠올린다.
돌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신기한 뉴스를 보았다.
누군가의 애정으로 곱게 단장하고 있는 돌의 모습은 내 눈에도 귀여워 보였다.
돌을 분양하시는 분이 반려돌의 장점으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매력이라고 하셨다.
애정을 가진 대상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 마음은 십분 공감하지만 나의 햄을 돌아보자면,
나는 햄이 나와 같이 나이를 먹는 것이 좋다. 탱탱하던 햄도 쭈굴쭈굴해진 햄도 사랑스럽다.
그 마음의 대상이란 사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것이 인형이든 돌이든 햄스터이든 무엇이 상관이겠는가.
유일한 것과 유일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과정이 그 어떤 비교도 잣대도 평판도 무색하게 만들 텐데.
봄날의 햇살같이 포근하고 귀여운 존재들이 널린 세상이다.
쭈굴쭈굴해지는 마음도 함께 잘 빨아 널고 싶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