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하고 싶다.
영어는 왜 안 늘까?
'영어는 왜 해도 안 늘까?'라고 쓰려다 '해도'를 집어넣기엔 양심에 찔려서
스스로도 1초 만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적어버렸다. 꾸준히 안 하니까 안 늘지.
이렇게 꾸준히도 안 하면서 꾸준히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신기하다.
그 신기함의 근원을 살펴본다.
첫 만남부터 삐걱대긴 했었다. 영어는 유독 성적이 나오지 않는 과목이었다.
시험기간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항상 평균점수를 깎아먹던 것이 영어였고, 그래 나도 너 싫다, 우리 될 수 있으면 영원히 마주치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국어교육과에 지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스물여섯 살에 처음으로 간 유럽여행에서 크게 깨달았다. 말을 못 하니 바보가 된다는 것을. 문장 몇 개만 외워갔을 뿐, 읽는 것도 간신히,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던 나의 영어 수준이 답답하다 못해 아찔해지는 상황을 계속 만들었다. 아 정말 영어 너. 진짜. 그래 까짓 내가 공부 다시 한다 해. 하고 돌아와서 몇 달 잠깐 했었던가.
여행에서 얻게 된 동력이었기에 여행을 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다시 여행을 간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였는데 행선지는 공교롭게도 중국 윈난 성, 영어가 크게 도움이 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지역이었다. 손짓발짓으로 다니는 여행도 경험해보고 나니 두 번째 여행만에 다시 영어 좀 못해도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고 영어와는 이대로 멀어져도 되겠구나 했다.
서른넷에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 협력사업으로 몽골친구들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또다시 영어가 필요해졌다. 말이 통해야 뭘 하지. 요즘같이 AI 번역기가 좋아진 시대였다면 달랐을까. 아무튼 그래서 또 바짝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그 친구들과도 소원해지면서 다시 나에게 영어의 쓸모는 사라졌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런 패턴이 수십 년째 계속 반복되고 있다.
싫은데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고, 필요한데 그렇다고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닌.
잘하면 정말 편리할 것 같은데 잘하기까지 들이는 품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자꾸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러니 이 영어와 나와의 관계가 무슨 때 되면 만나게 되는 외나무다리의 원수 같은데 자꾸 보다 보니 정들어서 더 이상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이번에 다시 영어가 필요해지는 상황이 생겨서 오랜만에 또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너도 나도 쉽고 재밌게 가르쳐주고 있는 영어 공부 동영상들 사이에 내 수준에 맞는 것 몇 개를 골라 보며 영어마저 쓰기를 잘해야 한다니 좌절하며 그래도 꿋꿋이 다시 한다. 영어. 너. 정말. 아. 나도. 언젠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