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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Feb 15. 2024

너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기

엄마의 혼자만의 시간

퇴사 후 나의 삶은 이러했다.

7시에 일어나 따끈한 에 고기반찬, 나물반찬, 과일까지 영양 밸런스에 맞춰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7시 30분에는 딸아이를 간지럽히며 깨우고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밥 먹은 후 이빨 닦고 세수하라고 재촉이며 졸 졸 따라다녔다. 아이 기분에 맞춰 연산 한 장 풀고 갈래? 영어책 하나 읽고 가면 어때? 회사 다니느라 공부습관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침 공부 습관 들이기를 한답시고 어떻게 하면 아침부터 기분 상하지 않게 공부를 시킬까 싶었다.

머리를 묶어주며 어떤 방울로 묶어줄까? 라며 너의 의견을 묻는 아주 좋은 엄마인척 했지만 속으로는 대충 머리 묶여 빨리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학교 끝나고 온 너를 반갑게 맞이하는 일이 워킹맘 시절의 기대만큼이나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 시간은 너무나도 일찍 다가왔으며 그 시간에 맞춰 집에서 너를 기다리지 못한 날엔 울고불고 너의 불만을 받아내는 일이 힘들었다. 가방 벗어던지고 놀이터로 달려간 아이들 뒤로 남겨진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 학원과 레벨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럴수록 공부습관 들이지 못한 나는 불안했다.


하교 후 간식 먹이고 차 태워 여기저기 학원 올려 보내고 차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은 왜 이리 죽은 시간 같던지.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집에 와 저녁 먹고 공부습관들이기 2차전에 돌입하는 시간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학교 갔다가 학원 가고 운동까지 하고 온 너는 쉬고 싶었을 테지. 나도 쉬고 싶긴 매한가지였지만 공부습관들이기가 지상 과제인 나는 어르고 달래다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우리의 저녁은 매우 기분이 상한 채로 끝나는 날이 많았다.


"오늘 아침은 뭐야? 그거 어제 먹었잖아. 먹기 싫어. "

"엄마가 준비물 안 챙겨줬잖아."

나를 조종하는 듯한 너의 말투가 점점 거슬렸다.


"엄마! 오늘 연산 1장 안 하고 내일 2장 하면 안 될까?"

"엄마! 영어책 따라 읽기 싫어. 그냥 듣기만 하면 안 돼?"

"엄마! 내일 영어시험 어디야? 엄마가 말 안 해주니까 나 공부 안 한다"

내 공부인지 네 공부인지 아이 공부에 관심을 가질수록 아이가 엄마를 위해 공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못해본 엄마 노릇하느라 애를 쓰면 쓸수록

이건 뭐 시녀인가? 이렇게 하면 좋은 엄마 되는 거 맞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벌어진 한 사건.

아이가 학원에서 받아온 샌드위치를 먹겠다며 샌드위치 박스를 열었고 배가 고팠던 나는 반씩 먹자고 제안을 했지만 아이는 자기가 다 먹겠다며 주지 않았고 샌드위치 안에 들어있는 게살과 양상추는 먹지 않겠다며 샌드위치박스에 빼내다 샌드위치박스가 내 차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 마요네즈 범벅인 게살과 젖은 양상추를 보자 꼭지가 돌았다.


"너는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엄마를 주지 않느냐?"

"엄마가 배고프다고 한 거 못 들었냐? 너 학원에서 기다리느라 엄마는 점심도 못 먹었는데 어쩜 그렇게 너만 생각하느냐. 정말 서운하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에라이

나의 노고와 헌신에 스스로가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겨우 10년 산 아이에게 마음을 주고받는 일, 어른에게 먼저 음식을 권하는 것이 예의라는 점에 대해 가르쳐주면 될 일을.

샌드위치를 못 얻어먹어 씁쓸한 감정을 쏟아 낸 내가 못내 부끄럽다.


혼자 씻고, 밥 먹고, 글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놨으면 되었다. 이제부터 너의 삶인지 나의 삶인지 모르겠는 생활과 경계를 무너뜨리는 너 말고 내 행동에 제동을 걸어야겠다.


너는 너고 나는 나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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