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더는 이 쓰레기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도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단기 도파민 피드백 고리가 사회의 작동방식을 파괴하고 있다. 또 페이스북 가입자를 확대 지휘했던 자신의 역할에 '심한 자책감'을 느낀다.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전 페이스북 부사장
영진이는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였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다녀오면 게임에 온 정신이 빠져 있었다. 게임을 하다가 학원에 가지는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저녁식사도 제때 하지 않았다. 영진이 엄마는 영진이에게 '게임 좀 줄여라', '게임도 좋은데 할 일을 먼저 하고 해라', '밥은 먹고 게임을 해라' 말했지만 소 귀에 경을 읽는다는 말이 이때 쓰는 말일터. 영진이 엄마는 '아들은 아빠가 잡아줘야 한다'는 주변 조언에 따라 남편에게 아들 게임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부탁했다. 절대로 화내지 말고 잘 달래 보라고 미션을 주었으나, 그날 밤 영진이 아빠는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되었다. 영진이 아빠는 좋은 마음으로 아들에게 대화로 다가갔는데, "(게임을 해야 하니) 빨리 할 말하고 나가"라는 아들의 말에 화가 나 핸드폰을 집어던졌고, 화가 난 아들이 아빠에게 달려들 것처럼 대들자, 아빠가 아이 뺨을 때리고 만 것이다. 더욱이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람이 바로 영진이었기에 영진이 아빠와 엄마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게임이 아들을 다 망쳐놓았다고 했다.
소연이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아이였다. 맞벌이인 부모님이 귀가하시기 전까지 소연이는 혼자 유튜브로 유행하는 아이돌 영상을 보거나 춤추는 것도 연습하고 화장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보았다. 또 친구들과 인스타로 서로 사진을 찍어 올리며 소통하며 시간을 보냈다.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 스마트폰 사용 시간제한을 두어 스마트폰을 관리했고, 순한 기질이던 소연이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잘 지키며 지냈기에 소연이 엄마는 스마트폰 사용을 큰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연이 엄마는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게 된다. 미성년자 성폭력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던 한 남성이 소연이에게도 연락한 것을 확인하였으니 피해가 있는지에 대해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오라는 것이었다. 그 남성은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예쁘게 생겼다.'를 시작으로 '어디에 사니?', '오늘 어디 가니? 태워다 줄게', '심심한데 만날까?'로 이어지는 대화를 시도했고, 아이들 몸캠을 찍어 전송을 하도록 했다. 그 사건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소연이와 같은 초등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날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 스마트폰과 패드를 샅샅이 살피며 그간 소연이가 스마트폰 세상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확인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스마트폰과 전쟁을 벌이는 엄마들을 상담하고 퇴근한 그날 밤은 유독 더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아동권리를 가르치고 아이들 편에 서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진을 때리면 안 된다', '소연이는 범죄 피해자이니 소연이 편에서 소연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대해달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피상적인 말은 영진이와 소연이 부모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해결을 할 수는 있을까? 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아동 청소년을 상담하는 복지기관에서 일한 나는 스마트폰의 어두운 이면을 일찌감치 목격했다. 아이가 스마트 폰 때문에 공부며 운동은 물론 가족까지 내 평개 쳤다며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또 부모가 스마트폰 이용시간을 제한하자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가출, 자해, 심지어 자살시도로 대응한 자녀들을 많이 만났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어했고 불행히 이러한 모습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났다.
더불어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범죄, 예를 들어 오픈채팅방 초대와 DM으로 시작하여 금품갈취와 성학대 등으로 이어지는 범죄가 결코 특정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아이들에게 일어났다.
결심을 해야 했다.
우리 집에도 유튜브라면 밥도 안 먹고 빠져드는 7살 어린양이 있지 않은가.
유튜브를 보여달라는 쌍꺼풀 없는 아이의 눈매가 장화 신은 고양이의 애원하는 눈으로 변하는 모습은 종종 귀여웠다.
그러나 대체로는 짜증을 동반한 '나 심심한데 뭐 하라고?' 식의 배짱을 부리기 일쑤였다. 심심하다는 아이 곁에는 아이를 위한 전집과 유명한 단행본들, 아이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받은 온갖 장난감들이 쌓여있었다.
좋은 책과 재미있는 장난감들이 제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아이는 가로 10센티 세로 5센티만 한 작은 핸드폰 세상에 갇혀 있다니.
그날 밤, 따뜻한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읽어주고 아이 손을 비비며 아이에게 물었다.
"봄이야, 봄이는 언제가 제일 행복해? 오늘 제일 행복했던 일은 뭐야?"
"지금, 지금이 좋아"
"지금? 어떤 거?
"엄마가 책 읽어줘서 재미있고 좋아. 행복해"
"봄이야, 유튜브는 재미있어? 봄이는 왜 유튜브를 보는 거야?"
"재미있잖아. 유튜브 안 보면 심심해. 엄마가 안 놀아 주니까"
엄마의 죄책감을 후비는 사건 전개에 '네가 유튜브 보여달라고 떼쓰면서 왜 엄마를 탓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하였으나, 그 말은 마음속으로 삼켰다.
그리고는 "그렇구나. 봄이는 엄마랑 신나게 놀고 싶은 거구나? 그럼 앞으로 엄마랑 같이 신나게 놀자. 사실 엄마는 봄이가 유튜브를 계속 보면 눈이 나빠질까 봐 걱정 돼. 그리고 세상엔 다른 재미있는 것들도 많은데 봄이가 다른 재미있는 것들에 대해 모르고 유튜브만 보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 그리고 책도 많이 읽어줄게. 봄이가 엄마가 책 읽어주는 거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