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인 내 친구. 은영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비슷한 시기에 딸아이 한 명을 낳아 키우고 있다.
우리는 고3 같은 반 친구로 만나 다른 대학에 갔지만 대학 시절 4년 내내 붙어 다녔다. 수능이 끝난 다음날 귀 뚫으러 중앙동에 함께 갔고, 처음으로 머리 염색을 했다. 그렇게 순진했지.
서로에게 소개해준 남자친구만 진정한 남자친구로 인정하였고 서로에게 소개해주지 않은 남자들에 대해서는 썸남 정도로 그룹화했다. 각자 부모님 문제로 술잔을 기울였고 그만큼 의지했다. 나의 20대 초반은 늘 은영이와 함께였다.
은영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도 잘했고, 똑소리가 났다. 문예부 활동도 열심히 했고 내신관리를 잘해 수도권 교대에 수시 합격을 했다. 그런 그녀가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더니 엄마 아빠 닮이 키 크고 늘씬한, 쌍꺼풀이 예쁘장한 딸아이를 한 명 낳아 인형처럼 키웠다.
결혼은 내가 먼저 했지만 아이는 은영이가 한 해 먼저 낳았다. 그래서 종종 그녀에게 엄마 노릇에 대해 물었고 육아용품도 그녀의 허락을 득한 후 구입했다. 은영이에 대한 나의 신뢰는 항상 100%였으니까.
그러나 은영이가 사용하는 육아용품과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육아용품의 갭이 커지자 묻는 횟수가 줄었고, 연락도 차츰 줄어들었다.
우리 아이 첫차, 유모차는 스토케가 좋다고 했지만 스토케를 사지 못하고 조카가 사용하던 유모차를 물려받았다.
7살에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가성비 가장 좋은 영어 교육법이라고 했지만 영유에 보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
몽클레어 패딩을 입고 나타난 은영이 딸과 필라 패딩을 입고 나온 내 딸
자꾸만 경제력 비교가 되니 은영이와의 만남이 유쾌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은영이가 대놓고 자랑을 하는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당시 남편의 수험생활과 불투명한 미래로 한참 예민한 상태였고, 그 누구도 시키지 않는 비교질을 해가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초라해했다.
티브이, 유튜브는 당연히 안 보여줘.
영상은 하루 1시간 영어로만 보여줘.
매일 영어 CD를 틀어놔야 해. 아이가 듣기 싫다고 해도 엄마가 듣고 싶다고 듣든지 말든지 계속 틀어놔.
책은 아침저녁으로 매일 읽어야 해. 한글독서 중요한 거 알지? 영어 책도 물론 읽어줘야지.
영어로 인풋(듣기, 읽기)이 차면 아웃풋이 나와. 그래서 요즘 영어로 인형놀이를 한다니까.
기집애, 시집도 잘 가더니, 아이는 또 왜 이렇게 잘 키운다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그날 밤. 조바심이 났다.
이럴때 엄한 애잡이가 있는 날이지만, 그날은 아이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그래, 몽클레어 패딩은 못사줘도 내가 책은 읽어줘야지.
봄이야. 이리 와봐. 오늘부터 우리 유튜브 보지 말자. 만화가 보고 싶으면 영어로만 보자. 엄마가 오늘부터 매일 책 읽어 줄게. 재미있는 책 골라보자.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요즘은 태어나자마자 책육아를 시작한다는데, 아이 7살에 책육아를 시작했다. 늦었지만 차곡차곡 잘 쌓아 나아가보자며.
7살에 시작한 책육아
은영이 덕분에 늦깎이 책육아에 동참하게 되었다. 3년 넘게 자기 전 1시간 남짓 책 읽기는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옆구리에 아이를 착 끼고 아이의 손등을 부비부비하며 함께 책을 읽는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책육아는 친구에 대한 부러움으로 시작했다. 나도 저렇게 내 아이 한번 잘 키워보자며. 늦게 시작한 책육아를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 역시도 7할은 부러움이다.
우와 저 아이는 어쩜 저런 생각을 할까?
저 나이에 논리가 완벽해!
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걸까? 궁금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육아 노하우를 물을 때면, 은영이를 비롯한 아이 잘 키우는 엄마들의 대답은 한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