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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에서 먹고 살기의 즐거움

by 낭만육아

한 달 살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그 나라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계속 먹고 자꾸 먹는 성질인 우리는 필리핀에서는 망고, 호주에서는 스테이크, 뉴질랜드에서는 납작 복숭아와 앵커우유를 매일같이 먹었다. 맛있는데 저렴하기까지 하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간이 작은 것인지 손이 작은 것인지 양념을 팍팍 넣지 못해 간장, 고추장, 설탕, 소금, 참기름 등 갖가지 양념으로 버무리는 한국음식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에게 아이와 한 달 살기가 편하고 즐거운 이유는 단출한 주방 살림 덕분이다. 사실 양념이 있어 봐야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준비된 양념이라고는 한국에서 조그마한 약통에 싸 온 소금과 설탕뿐이니 한 달 살기 모든 음식은 소금과 설탕으로 조리한다. 얼큰한 맛을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소금과 설탕이면 충분하다. 변명을 많이 보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을 준비한다고 해야 할까? 가령 소고기를 사 온 날에는 버터에 소고기를 구워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파프리카, 브로콜리를 구워 밥과 함께 먹는다. 매우 간편하지만 또 맛은 좋다. 이렇게 번잡하지 않은 음식 조리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먹는 망고, 블루베리, 납작 복숭아 등 과일을 실컷 먹는다. 작은 냉장고엔 하루이틀 치 식재료만 채우고 얼른 다 먹어 치운다. 그게 양손 무겁게 사다 나르는 수고도 줄이고 신선한 식재료를 잘 살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냉장고가 비워지면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점점 노하우가 생긴다고 해야 할지 꾀가 는다고 해야 할지. 한 가지 식재료로 삼시 세 끼를 차려낸다. 예를 들어 닭 한 마리를 사 온 날에는 저녁엔 닭다리를 구워 먹고, 다음날 아침엔 삼계탕을 해 먹고, 런치박스에는 닭가슴살로 만든 볶음밥을 싸주는 것이다. 그렇게 주중에는 보통 숙소에서 밥을 해 먹고 런치박스를 쌌다.


런치박스는 주로 김밥과 볶음밥이다. 아이가 시드니 어학원에 다닐 때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런치박스를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밥을 위주로 런치박스를 쌌고, 한국인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메뉴라고 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컵라면을 싸달라고 해서 한인마트에 가서 진라면 순한 맛 작은 컵을 사서 가지고 갔다. 친구들과 나눠 먹는데 작은 컵은 너무 작다며 다음에는 큰 컵을 사가야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귀여웠다. 오클랜드에서는 첫날 김밥을 싸줬다. 같은 반에 한국인이 없어 현지 아이들과 런치박스를 먹은 아이는 다음부터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싸달라고 했다. 현지인 친구들을 의식한 모양이다. 아이의 요구대로 다음날부터는 샌드위치도 싸고 크림파스타도 싸고 토마토파스타도 쌌다. 점점 메뉴가 글로벌해졌고 그건 그거대로 재미가 있었다. 한 달 살기에서 매일 밤, 아이와 침대에 누워 런치박스와 모닝티 메뉴를 정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이 하교 후에는 함께 마트에 가서 내일 가져갈 런치박스와 모닝티 장을 봤다. 모닝티를 핑계 삼아 평소엔 사주지 않는 과자를 사 먹는 것도 아이에게 큰 기쁨이었다. 매일 먹는 모닝티(라고 쓰고 과자라고 읽는다)가 얼마나 좋았겠는가?


한 달 살기에서 주말은 먹는 즐거움이 더욱 가득하다. 주말엔 지역 맛집에 들르고 주말에만 열리는 파머스 마켓을 찾아간다. 시드니에서는 주말에만 열리는 The Rocks Markets에 주말마다 들렀다. 일요일 아침에 The Rocks Markets 근처 하버브릿지 밑에서 무료 요가교실이 있었는데, 그 요가교실에 참여하고 The Rocks Markets에 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우리의 일요일 오전 일과였다. The Rocks Markets에는 푸드트럭부터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까지 많아 구경하는 재미까지 더했다. The Rocks Markets 푸드트럭에서 먹은 이탈리아 피자가 특히 맛있었는데, 피자를 만드는 주인은 이탈리안이라고 했다. 역시 이민자의 나라답다. 이탈리안 피자 아저씨는 “차오”라며 경쾌하게 인사를 하고 이탈리아 노래인지 낯선 노래를 틀어놓고는 춤을 추며 피자 반죽을 늘리고 돌렸다. 이탈리아 아저씨의 신난 얼굴이 특히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즐거운 얼굴을 하고 만들어 내는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없었다. 오클랜드에서는 동쪽 외곽 Howick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는 매주 토요일에만 Howick Village Market이 열렸다. 로컬 시장답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 수제 잼과 꿀, 치즈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갓 구운 치아바타로 만든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Howick 비치에 가면 아주 훌륭한 주말이 되었다. 오클랜드 전쟁기념 박물관에 가는 날에는 버스에서 잘못 내려 아주 우연히 Parnell Farmer`s Market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사 먹은 치즈케이크는 인생 최고의 치즈케이크였다. 따뜻한 커피와 먹는 치즈케이크 맛이란. 낙농국가답게 치즈는 아주 다양하고 맛이 좋았는데, 그런 치즈로 만든 치즈케이 크여서였을까? 유독 진하고 꾸덕한 치즈케이크 맛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Parnell Farmer`s Market 한 상점에서는 가마솥 같은 기계에 진짜 옥수수 알맹이를 넣고 팝콘을 튀겨 냈다. 옥수수가 튀겨지는 모습도, 소리도, 냄새도 모두 아이의 눈과 귀, 코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가장 큰 팝콘을 사들고 해맑게 웃는 아이는 팝콘을 남겨 내일 모닝티로 싸가겠다고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으나, 로컬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친절하고 열정적이라서 자신의 제품에 대해 설명하기를 즐긴다. 그들의 에너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인데, 신선한 현지 농산물을 구경하고 갓 구운 빵과 케이크를 사 먹는 재미는 더욱 흥분된다. 현지인들 틈에서 장을 보고 배를 든든히 채우다 보면 ‘내가 정말 이 도시에 살고 있구나’하는 벅찬 마음까지 든다.


로컬시장 찾는 팁과 즐거운 주말 보내기

구글맵에서 ‘farmers market’, ‘로컬시장’, ‘시장’, ‘마켓’ 등으로 검색하면 카트 표시와 함께 리스트가 나온다. 검색한 곳을 클릭하면 지도에 로컬시장이 표시되어 나온다. 그곳의 리뷰를 확인하면 로컬 시장에서 가장 핫한 상점과 음식을 알 수 있다. 또 구글맵 위쪽에 관광명소를 클릭하면 로컬시장과 가까운 관광지도 리스트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주말에는 관광명소와 함께 로컬시장에 들러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사 먹어보자. 그 나라, 그 도시를 가득 느끼는 주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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