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다'는 게 이렇게 위험하고 도발적인 정서였는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읽었다. 분명 예전에 읽긴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또 다르게 다가온다. 나이에 따라 감동이 다른 건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건가? 기억력이 감퇴하여 예전에 읽은 것도 색다르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특히 주인공 윤희중의 아내가 '돈 많은 과부'라는 설정은 정말 생소하게 다가왔다.
오래된 작품이라 성 감수성이나 시대상은 달라졌겠지만, 작가의 심상은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유독 '하인숙'이라는 여성이 눈에 밟힌다. 그는 왜 그런 만남을 택했을까?
소설 중 성악을 전공한 그녀가 모임에서 유행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희중이 왜 유행가를 부르느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한다. "심심해서요……."
그녀가 말한 '심심함'은 단순히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출구 없는 현실에서 느끼는 '실존적 권태'에 가깝다. 이 심심함은 이토록 위험하고 도발적인 정서였던가. 아무런 변화도, 희망도 없는 무진이라는 안개 속에서 자신의 재능이 썩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이에게 '심심함'은 곧 죽음보다 깊은 허무의 비명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희중에게 묻는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자신이 싫어질 만큼 지독한 권태 속에서, 그녀는 "일주일 동안만 멋있는 연애를 할 계획"이라며 도발적인 제안을 건넨다. 하지만 이 제안 역시 사랑이라기보다, 그 무서운 심심함을 깨뜨려 줄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으리라. 희중은 그녀에게서 '옛날의 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햇볕 속으로 이끌어 주겠다는 편지를 쓰지만, 결국 그 편지를 찢어버리고 만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희중은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팻말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부끄러움은 아마도 한 여자의 절박한 심심함을 목격하고도, 결국 자신의 안온한 세속적 삶을 위해 그녀를 다시 그 안개 속에 방치하고 떠나는 자의 비겁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삼 심심함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고, 끝내 자아마저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 고독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옛날에 읽던 소설을 다시 읽는 또 다른 기분을 만끽하는 연말이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이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가진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계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집에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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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마지막 휴가를 집에서 보내고 있다.(12/30)
책도 읽고, 짬짬이 톡도 하고, 일도 하고, 글도 쓰고
늘 관심사가 많은 게 문제다.
집중하지 못하고 짬짬이 딴짓을 하는 모양새랄까.
하나를 지긋하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
한 해 동안 여러 곳을 많이도 기웃거린 것 같다.
그래도 나의 다양한 기웃거림이 의미 있게 쓰일 날들이 오면 좋겠다.
조금후면 저녁 일정을 소화하러 외출을 한다.
내년엔 브런치를 조금 더 사랑해야겠다.
'함께한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무진기행 #김승옥 #하인숙 #윤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