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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보름간 한 남자에 집중하다.(추락을 읽고)

큰 키에 매력적인 얼굴과 올리브색 피부와 부드러운 머리칼을 가진 남자에게

by 따오기


근 보름간 한 남자에 집중했다.

큰 키에 매력적인 얼굴과 올리브색 피부와 부드러운 머리칼을 가진 그 남자에게…


이상하다.

쿳시 소설은 다 읽어도 다 읽은 것 같지 않고

자꾸 들여다보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읽을수록 보이는 게 많고 수수께끼가 풀린달까.


'루시와 루리'

부녀 관계가 남다르다.

둘의 대비는 무엇을 위한 설정인가?


데이비드(루리)가 본능에 충실한 것처럼

루시도 처한 상황에 순응하는 걸까

데이비드의 죄를 루시가 감내하는 걸까?

각자의 생을 제각각 사는 것뿐인데 계속 혼란스럽다.


그의 책, 두 권을 모두 두 번 이상 읽었다.
처음 읽을 땐 그저 텍스트를 따라가느라 그 마음까지 동화되질 않았다.
‘독특하군’ 정도랄까?

책장을 다 덮을 무렵엔 다 읽었다고 뿌듯해야 하는데

그 뿌듯함이나 개운함이 없다.

'왜 그랬을까?'

'그래서 뭐라는 거야?'

'왜 그래야만 했던 거야?'

'무슨 맘인 거야?'

다시 궁금증이 생겨서 또다시 책을 읽는다.


저절로 앞으로 돌아가 처음 읽을 때 보다 더 정성 들여 읽는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네.

이랬구나.

내가 너무 내용을 듬성듬성 읽었네.

‘폴란드인’도 그랬고 ‘추락’도 그랬다.

‘추락’은 더 오리무중이다.

거기다 초기부터 일관되게 오페라 이야기가 군데군데 나온다


데이비드의 사과법도 루시의 용서법도 다 무난하지 않다.

애초에 무난하면 소설이 안 됐겠지.

상도 못 받았겠지.


부녀가 안 닮은 것 같으면서 은근히 닮아 있다.

각자의 주어진 삶에 대처법은 다르지만 둘 다 독특하고 독립적이다.


쿳시의 작품 속 남자들이 왠지 실제 쿳시와 많이 닮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쁜 남자 같으면서 은근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은 남자랄까?

어쩜 나쁜 남자라기보다 자유로운 남자랄까? 본능에 충실한 남자랄까?

내 주변에 있다면 경계해야 할 것 같은.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스며들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부류랄까?


어느 대목에선가? ‘사랑하는 방법을 시인들로부터 배웠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삶은 또 다른 얘기란 걸 알아가고 있다는…,

그것도 처절하게…


쿳시의 작품을 읽으며 잠시 주인공 폴란드인과 데이비드와 연애를 한 것처럼 저릿하다.

분명 끝난 후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 애매한 사랑이랄까?

그러나 살다 보면 한 번씩 기억나는 한 장면으로 남을 사랑이랄까?


한동안 사랑을 잊고 살았다.

묻어두고 무덤덤하게 살았는지도.

과거형이라고 덮었는지도…


그 남자를 읽으며

쿳시를 만나며 잠시 ‘사랑’을 떠올리고 ‘사람’을 떠올리는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는 계절이다.


이제 그 남자를 떠나보내야겠다.

너무 집중했는지 내 삶이 혼란스럽다.

역시 남자는 여자의 삶을 혼란케 한다. 역으로도 그렇겠지.

그나저나 멜러니는 그 남자 루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끔찍하게? 가끔은 웃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시대도. 역사도. 사랑도. 인생도 다 어렵다.

삶이 늘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만 나아가면 삶이 아닐 거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가끔은 롤러코스트도 타다가 아예 추락하기도 하는 게 삶인 것 같다.

추락 후 감내해야 할 몫은 또 각자에게로 남겨진 채.

그래도 루리가 동물과 함께 지내서 다행이다.

생명과 자연과 함께 지내서~~


오늘부로 쿳시와 잠시 안녕을 하려 한다.

이러다 문득 어느 날 다시 쿳시를 지독하게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줄거리는 생략한다. 몇 줄 적는다고 이해가 될 내용도 아니고.
그저 읽고 또 읽다 보면 알게 되고 느껴지는 이야기랄까?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윤리 이야기 같기도. 삶 이야기 같기도…

아님 부녀가 제각각 생을 대하는 자세를 다룬 이야기랄까?


지독히 낭만주의적이고 어리숙한 교수가 꿈꾸는(쓰려는),

멋들어진 오페라가 계획과 다르게 뒤죽박죽 얽혀 치정이야기가 된 이야기랄까?

사랑괴 치정은 백지장 차이려나?

내 깜냥에 시대적 배경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는 거로…





#쿳시 #추락 #올리브색피부 #남아프리카 #폴라드인 #부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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