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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THE POLE)을 읽고

40대 여자와 70대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

by 따오기

폴란드인(THE POLE)을 읽고


친구가 보낸 한 권의 소설이 도착했다. 폴란드인(THE POLE)?

포장을 뜯자마자 본 책표지가 맘에 든다.

쿳시! 작가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읽어 본 적은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라는데... 갑자기 민망했다.


책을 열자마자 저명한 분들의 찬사가 쓰여 있다.

난 책을 다 읽고 무슨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함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내렸다.


다른 책과 조금 다르게 챕터마다 번호를 부여해 놓았다.

신기했다. 마치 작가의 메모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읽다 보니 그것이 딱히 방해되지는 않았다.


소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친절하고 다정하나 섹시하지는 않고,

걸음걸이가 편안해 보이는 우아한 40대 여인 베아트리스(은행가의 아내이자 )와

폴란드에 사는 활력이 넘치고 키 큰 70대 쇼팽 전문 피아니스트의 폴란드인(비톨트) 이야기다.


40대 여자와 70대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

어쩜 그들의 관계를 일탈로 볼 수도 있으나 책 속에서 본질적으로 사랑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자백한다. 이제껏 살아온 바로도 사랑은 논리로 계산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영역이 틀림없다. 일탈이라고 하기엔 오랜 시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끝까지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녀와 그 남자는 음악을 매개로 만났다.

폴란드인은 베아트리스에게 메일로 쇼팽의 음악을 연주해서 cd로 전달해 주고

서로 모국어가 달라 영어로 소통하느라 힘들지만 음악이 말을 하게 하고.

어느 날 마요르카 섬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둘의 역사를 만든다.

그리고 간간히 서로 물리적인 공간은 다르지만 음악과 서로 다른 언어로 소식을 전한다.

폴란드인은 베아트리스를 만나며 평화와 사랑을 얻고

베아트리스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아직 충분히 매력적인 자신을 알아간다.


그. 러. 다…

폴란드인은 죽고 베아트리스를 위한 시 84편 남긴다.

폴란드어로 써져 있어 읽을 수 없는 언어로 된 시를 읽기 위해

바르샤바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그의 마음을 읽어 내린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감정으로 하는 거라는 말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베아트리스 입장이라면 나를 좋아한 사람이 내게 남긴 유품을 남겼다고 타국으로 나설 수 있을까? 번역을 의뢰하며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며 늘 ‘나라면’을 대입해 보지만 각자의 사랑법과 상황 대처법이 있으니 ‘나라면’은 언제나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베아트리스가 아니니까.


번역자는 그렇게 말한다. 소설은 사랑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얘기하면 사랑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사랑 이야기라고…


소설 속에 40대 여인 베아트리스가 폴란드인에 대해 남편과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부부사이라 100% 진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폴란드인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그리고 부부사이에 있을 수 있는 추궁이나 더 이상의 확대는 하지 않는다. ‘좋은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비밀을 가질 권리를 서로에게 인정해 주는 것이다’라고 쿳시는 이야기한다.


폴란드인은 ‘나는 폴란드를 좋아하면서 폴란드를 싫어해요.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많은 폴란드인들이 그러니까요. 폴란드를 사랑하려면 거기에서 태어나야 해요. 만약 당신이 오면 우리나라를 안 좋아할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폴란드를 좋아하잖아요.’하는 구절이 있다. 훗날 폴란드인은 그녀에게 주는 시를 모두 모국어(폴란드어)로 썼다. 시는 모국어로만 쓸 수 있다던 그의 이야기가 격하게 공감된다. 이 소설은 국가와 언어가 다른 이들의 사랑이야기다. 참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이야기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쿠시가 젊어서 쓴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쿠시 말고 좀 더 육감적이고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쿠시는 어땠을까? 이상하게 여운이 남는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읽고 영화로 봤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두 주인공이 생각나던 영화다. 그들처럼 뜨겁지는 못하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은근히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이 소설도 영화로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쿳시의 텍스트를 어떻게 영상으로 섬세하게 표현할지는 각자의 영역이겠지만 말이다.


이 번 책은 처음 읽을 때 보다, 두 번째 읽을 때 더 좋았다. 이상하게 책을 다 읽었다고 덮어지지가 않는다. 자꾸 베아트리스와 폴란드인을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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