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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May 14. 2024

나무, 돼지

대전으로 이사 오고 난 후로는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로 자주 들락거리는 중이다. 단거리만 다니던 베니도 이제야 고속으로 제대로 달린다. 3년 동안 겨우 15000km 탔으니 뭐 모셔뒀었다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제 운전도 꽤나 늘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당하게 나라 금고에 범칙금을 내는 딱지를 끊는 경험도 했다. 영수증처럼 길게 쭉 뽑아주는데 엄청 자세히도 적혀있고 엄청 길기도 한 딱지였다. 


그날의 상황에서 초심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자신감 게이지가 꽤나 찬 상태에서 일정까지의 시간이 촉박하니 좌회전 차선에서 직진을 해버렸다. 좌회전차선에서 직진해도 된다는 걸 기억해 내고 냅다 직진했더니 앞에 경찰선생님이 날 딱 기다리고 있었다. 나 같은 놈들이 많은 상습지역인듯했다. 다른 날 같으면 싼 거 끊어주세요, 다른 지역에서 와서 초행길이라 등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겠지만 내 양심이 그렇게 안되었다. 왜냐면 직진금지 표시도 보았고 저기 파란색 화살표 표시들도 내 눈으로 보고도 갔으니.


그렇게 나의 운전실력에 대한 초심 찾는 비용으로 6만 원과 벌점 15점을 썼다.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항상 긴장한다. 로드킬을 발견할까 봐, 로드킬을 내가 하게 될까 봐.

고양이, 새 최근엔 고라니도 사체로 보았다. 보고 나면 한동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고 속상하고 그렇다. 


하루는 대구에서 대전 올라가는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잔뜩 실려가는 돼지들을 적이 있다. 물론 순간에는 살아있지만 뭔가 슬픈 느낌이 드는 로드킬과 맞먹는 아픔이었다. 눈에 그려지는 미래가 보여서였겠지. 그러고 며칠은 돼지고기를 안 먹었다. 몇 달 몇 년은 쉽지 않으니 짧은 기간이라도 명복을 빌었달까.


또 다른 하루는 대전에서 대구 가는 길에 보통 가로수보다도 큰 나무가 트럭에 옆으로 누워 타고 가는 걸 봤다. 그때는 조금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무 입장에서 보면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것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좋겠다 싶었다. 근데 금방 글을 쓰면서 간과한 것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나무로 잘려서 가구가 되든 종이가 되든 생을 다할 수 있는 건데. 하지만 그 친구는 뿌리가 꽁꽁 묶여 있었고 초록 머리도 잔뜩 달고 있었으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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