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름정도 남은 가게의 계약기간.
조용히 슬금슬금 나의 초록 아이들을 정리하고 있다. Zbcdx0o9 금방 키보드를 물티슈로 금방 닦았는데 눌려진 숫자가 그럴싸한 암호코드 같아서 그냥 남겨본다.
여하튼.
폐업정리, 세일 같은 걸 붙여두고 싸게 팔으라는 주변의 또 오지랖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는 말로 그들의 입을 두 달여간 막아왔다.
머릿속에 계획이 있지만 구구절절 말해봤자 원하지 않는 피드백을 받을 바에는 말하지 않는 게 나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꽉 막혀있진 않았다. 지금도 그때도 그들의 지대한 관심과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같았지만 내가 놓치는 빈틈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기준을 가지고 있던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달랐다.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인 척 들어왔던 나의 태도가 오히려 오지랖을 한 층 더 레벨 업시킬 뿐이었다. 운영하는 사람이 제일 잘 아는 건데 오지라퍼들은 세상에서 그들이 모든 걸 다 아는 식의 말투다.
화가 잘나지 않는 편인데 이들의 끊임없는 간섭에 '화'와 '분노'라는 감정이 점점 짙어져 버렸다. 나만의 룰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존중따윈 전혀 없는 사람들. 필요 없는 관심과 걱정은 당사자에게는 무례한 것임을 모른다. 이 말은 다른 글에서도 적은 것 같은데 요즘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사실이라 그런가 보다.
사업을 하는 동안 꼬여버린 나의 마인드에 나도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언젠가 우울증이 약하게 있던 그때, 이렇게 정신을 놓다가 정말 사람이 미칠 수 있겠구나 라는 순간의 두려움에 번쩍 뜨이면서 내 상태에 대한 인지 덕분에 전기충격치료받은 듯이 우울증을 극복되었던 적이 있다. 예전의 그 극한점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내가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 그 요즘의 상태의 나는, 오지랖을 더해 내 감정까지 판단해 버리는 사람들에게 피로함을 느낀다. 너그럽지 못하게 꼬여버린 내 관점에서의 피로의 이유가 일반적인 건지 상식적인 건지는 모르겠다.
가게가 망해 그만한다는 사실이 좋지 않은 결과지만 그걸로 내가 슬프진 않다. 미숙했던 점, 게을렀던 점 등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지만 그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던 중년 아줌마들로부터의 해방, 새로운 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인지 마지막이 보이는 지금, 오히려 난 안되던 소화가 되는 후련한 느낌이다. 앞으로 뭘 할지 계속 고민하는 시점에서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재료, 장비, 땅만 있다면 정말 나는 집도 지을 수 있겠다 싶은 정도로 난 할 줄 아는 게 많다. 여기서 진짜 내가 느끼는 슬픔은 집을 지을 땅, 재료와 장비를 살 돈이 없다는 그 현실이 슬프다는 것. 어쨌든 엄청나게 뭔가 잘하진 않지만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다양한 일도 해보며 가진 경험능력치도 높고, 좋아하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내 미래가 그렇게 슬프지 않다. 그래서 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더 내 감정에 대한 짐작과 그것에 대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데, 꼬여버린 예민번데기는 피곤하다. 예민충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난 예민번데기.
대놓고 파격세일을 하지 않는 것도 이유가 나름 있다.
이러한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내 아이를 잘 보호해 주길 바라는 마음과 다시 내 아이를 찾으러 올 그날을 위해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의 마음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판매하려고 데려 온 식물들이지만 나의 가족인 초록이들이다. 가끔은 식물을 생명처럼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손님들에게는 판매하고 싶지 않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나에게 안 갔으면 하는 마음.
평소에는 제 값을 주고 데려올 만큼의 가치라고 느끼지 않던 사람들이 저렴할 때 얼씨구나 쉽게 데려가서 그 초록이에 대한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걱정 때문에 대문짝만 한 세일 공고는 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편협할 수도 있다. 오히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지만 식물에 대한 사랑이 진심인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일 수 있겠지. 근데 그걸 어떻게 케이크 자르듯이 갈라 나눌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단골손님과 식물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영업종료 소식과 저렴하게 데려가 달라는 연락으로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난 다음에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다녀간 친한 언니가 셀링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주어서 만들던 와중에 빠져나가는 식물들이 생겨 리스트 만들기는 미뤄뒀었다. 다행인 건지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나머지는 나의 집과 부모님 집에 나눠 데려올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셀링리스트 제안을 해주었던 언니랑 가게 폐업을 앞두고 만나 많은 얘기를 했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적기 시작하게 된 데에도 많은 힘을 준 언니다. 언니를 만났던 그날, 그 당시 답답함을 느끼던 것 중 하나가 감정을 표현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고난과 역경에서 엄청난 대작이 나온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 처한 이 상황이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얻는 고난과 역경의 시기라 이것을 어떠한 수단으로 표출해 내는 것으로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좋은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수렁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줬던 코드쿤스트의 음악, 그의 생각과 삶을 표현한 음악이 나의 이러한 갈증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지식을 얻고자 분야 가리지 않고 보던 유튜브에서도 작가들의 시선,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보자니 그런 욕구는 더 커져갔다.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리지만 잘 그리지도 오래 그리지도 못하고, 피아노를 칠 줄 알고 악보를 보지만 작곡은 할 수 없는 내가 표현의 갈증 해소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글이다. 삶의 순간순간에서 얻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책을 내려고 했던 그 목표를 조금 앞당겨 지금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짧게 그 순간들에 sns에 내 생각들을 써 올린 글들을 꽤 재밌어하고 다른 이야기를 궁금해했다는 점도 큰 이유다.
이렇게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고 성장하려 애쓰는 사람이니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과 간섭은 멈춰주면 감사하겠다
라고 말하고 싶은 예민번데기. (번데기라 적지만 번데기라는 글자만 봐도 징그럽다. 번데기 탕의 그 모습은 꼭 벌레가 되기 전 이불을 감싸고 전기장판에 누워 에어컨 쏘이고 있는 모습 같은 그 비주얼이 생각나서. 네 개보다 많은 발을 가진 세상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예민번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