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유희
식성에만 관대함을 가진 우리 집 도련님은 산책도 쉽게 나가지 않는다.
눈이나 비가 오면 나가기 싫고, 다 내린 뒤에 젖은 땅도 싫고, 다른 집 강아지나 사람이 너무 많은 시간도 내켜하지 않는다.
그럴 땐 별수 없다.
짧게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 집안에서 놀아주는 수밖에.
보통의 사람들에게 집에서 강아지와 할 수 있는 놀이가 나름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것도 우리 또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9살이지만 이가 약해서 1/3 정도를 발치했기 때문에 터그놀이는 불가하고, 그 흔한 개껌마저도 물고 돌아다닐 뿐 잘 먹지를 못한다.
노즈워크를 돕는 장난감도 이제는 만렙이 되어 1분 컷으로 끝낸다.
그렇다면 공놀이는?
내가 던지면 또리가 달려가 물어오고 잘했다고 칭찬한 뒤에 다시 던져주는 그런 아름다운 장면도 우리 집에선 없다.
또리가 좋아하는 공은 이 세상에 단 하나, 그가 아주 어릴 적부터 가지고 놀던 천 원짜리 고무공인데(그래서 같은 모양으로 몇 개씩 사놓아야 한다) 내가 한번 던지고 그가 달려가면 그걸로 공놀이는 끝난다.
가져오라던지 내가 다시 가져갈라치면 입가의 털이 눈을 다 가릴 정도로 그르렁댄다.
결국 그와 내가 10분 이상 평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단 하나.
집안 곳곳에 간식 숨겨놓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또리는 이빨이 안 좋아서 먹을 수 있는 간식이 한정적이다.
더불어 7살부터는 눈 케어도 신경을 써줘야 하기에, 먹이면 빨간 눈물이 나는 간식들 또한 배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매일같이 먹는 까까는 한정적이다.
로***의 훈련용 저칼로리 간식과 아기들이 먹는 떡뻥.
강아지용 떡뻥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조카가 먹는 떡뻥에 정신을 못 차리고 따라다녀서 그때부터 유기농 유아 간식 사이트에서 주기적으로 떡뻥을 구매하고 있다.
(구매후기는 남들과 비슷하다 '우리 아이가 정말 좋아해요')
무튼 산책이 짧은 날에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 곳곳에 간식을 숨겨놓으면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신나게 찾아다닌다.
요새는 이 놀이도 스킬이 많이 늘어서 내가 숨기는 걸 찬찬히 살펴본 뒤에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나도 이에 뒤질세라 교묘히 숨기는 연기를 하고 또리가 속으면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신나는 숨바꼭질을 계속한다.
그런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이 놀이의 말미쯤이 되면 자꾸만 주책맞은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 온다.
'오래오래, 이 별 것 아닌 놀이를 계속할 수 있기를'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는 강아지라 그런지 어느 날부터 우리 또리가 더 이상 이런 놀이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잠만 자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과자도 떡뻥도 한 트럭을 사줄 수 있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기운차게 킁킁대주기를.
우리만 재미있는 숨바꼭질을 아주아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