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털북숭이 친구_5
반려인이라면, 아니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꼬순내'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주로는 강아지 발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는데 우리 강아지는 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로 자서 그런지 가슴팍에서도 진한 꼬순내가 난다.
물론 모든 반려인이 그 냄새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내 남편이 그러하다.
도대체 어디가 꼬숩고 좋다는 건지 모르겠단다.
그래서 내가 또리의 발꼬락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면 약간 변태 같다는 얼굴로 쳐다보고는 한다.
"가족이니까 내 새끼니까 그렇지!" 하면
자기도 가족이니 자기 발꼬락 냄새도 좋냐고 물어본다.
아니 전혀, 그럴 리가.
그러고 보면 우리 강아지들의 꼬순내에는 묘한 중독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건 마치 똥을 누고 물을 내리기 전 오늘의 변을 확인하는 것 혹은 땀으로 젖은 운동복을 빨래통에 넣기 전 냄새를 체크해 보는 일과 같은 맥락일까.(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하나씩은 변태 같은 행위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하는 행위라는 데서 공통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효용성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꼬순내는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작은 발에서 나오는 그 콤콤한 냄새는 따뜻한 강아지의 체온과 섞여 위안과 위로와 안정을 준다.
나는 우리 또리의 꼬순내를 3단계로 나누어 부른다.
꼬순내,꼬신내,숙성 꼬순내.
미용사 선생님이 아니면 절대 자신의 손과 발을 내어주지 않는 아이라 다음 미용 시기까지 점점 자라나는 그의 털과 함께 꼬순내도 진화하는 것이다.
미용이 임박하여 숙성 꼬순내가 또리의 온몸에서 날 때쯤엔, 이제 얼른 깨끗한 닭발 또리로 거듭나자는 마음과 폴폴 나는 이 꼬순내가 한동안 없어진다는 아쉬움의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꼬순내를 사랑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남편뿐만이 아니다.
당사자인 정또리도 '왜 이러지' 혹은 '이게 좋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좋다. 웬만한 향수보다 훨씬 좋다!
강아지도 사람처럼 나이가 들면 유분기가 없어져 꼬순내도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9살 또리에게도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오겠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그립고 서글프다.
또리의 큰누나라 불리는 우리 언니는 또리 발냄새를 좋아해서 그런가, 아직 아기인 조카들의 통통한 손과 발에서 나는 냄새도 그렇게 사랑스럽단다.
누가 그렇게 탁월한 이름을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강아지들의 꼬순내는 정말이지 언제나, 정겹고 반갑고 꼬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