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줌의 힘
기대 반, 불안 반으로 기다려왔던 딸아이 학교의 학부모 상담이 드디어 끝났다.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다. 그저 담임 선생님 한 번 찾아뵙고 우리 딸아이의 학교생활, 가정생활에 대한 정보를 함께 공유하며, '앞으로 서로 잘해 봅시다' 하고 파이팅 한 번 외치고 나오려 했다. 저녁 7시 40분경에 시작된 상담은 40분 정도 진행되었고 8시 20분경에야 끝이 났다.
학부모 상담을 이번에 처음 받아 본 것도 아닌데 매번 할 때마다 불편하다. 선생님과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갑을 관계가 되어버리는 느낌은 나만 경험하는 것일까? 어떻게든 어깨 한 번 더 펴고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막상 담임 선생님을 뵈면 어깨부터 움츠러든다. 등치도 나보다 작고, 딱 봐도 샌님 같은데 그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중하고 깊이가 있다. 수십 년간 학생들을 상대해 온 교육 전문가의 포스가 잔잔히 뿜어져 나옴을 느낀다. 와이프와 둘이 갔기에 망정이지 나 혼자 갔더라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만 하다 올 뻔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가 거의 마지막 학부모여서 그런지 다소 피곤해 보이셨다. 일주일 간 비슷한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하셨으리라. 내일 또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을 챙겨 대전으로 체험학습을 가셔야 한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참 피곤하다. 입시 준비에, 진로상담에, 아이들 격려에, 학교장 면담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상담할 때 제일 많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무래도 아이의 성적과 교우관계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 선생님께서 딸아이 학교 성적에 대해 조심스레 언급하기 시작하셨다. 나와 와이프는 선생님의 말씀을 천천히 음미하듯 듣고 있었다. 4등급이면 어느 학교, 3등급이면 어느 학교, 2등급이면 어느 학교... 다행히도 우리 딸의 성적이 학기를 지나면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말씀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우리보다 당사자인 딸의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지난 학기 성적 결과가 예상보다 잘 나오고 순위가 상승해서 인지 얼굴이 많이 좋아지고 말도 많아졌다.
더구나 이번 학년에 올라와서는 동아리 대표도 되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어 여러모로 힘을 얻고 있다. 어른들의 직장에서도 제일 힘든 것이 인간관계이듯, 우리 딸의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 기숙사 룸메이트까지 우리 딸이 힘들게 겪어내야 할 교우관계는 얽힌 실타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았다. 매주 금요일이면 처진 어깨를 억지로 끌고 집으로 들어오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녹아내렸다. 아버지였기에 그저 말없이 안아줄 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다행히 엄마가 그 자리를 메꾸어주고 맛있는 음식과 자잘한 대화로 딸아이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인생살이가 마냥 평행선일 수는 없는 일. 엄마의 성질 주파수와 딸아이의 성질 주파수가 만나는 날, 그날은 우리 집 초상날이다. 아빠와 아들은 일찌감치 숨을 죽이고 애써 태연한 척 딴짓을 하기 바쁘다. 오롯이 양쪽 귀만 열어놓고 두 사람의 고주파가 저주파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게 다였다. 한참 동안 설전이 오간 뒤에야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재빠르게 저녁 메뉴를 제안하곤 했다. 두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는 메뉴는 역시 주꾸미만 한 것이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워낙 말이 없어서 뭔가 가르쳐 주고 싶어도 쉽지가 않습니다."
풉! 속으로 웃었다. 이런 유쾌, 상쾌의 끝판왕이 에너지를 갈무리한 채 1년간 잘 견뎌왔구나. 집에 있을 때는 오빠와 시시덕거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아이인데,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과묵한 아이로 살아가느라 애쓴다 싶다.
"집에서는 말 많은 아이예요." 엄마가 대변해 주었다. 그제야 선생님도 미소를 지으신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선생님도 대충 감을 잡으신 모양이다. 웃음 많고, 말 많은 아이가 학교에서 말없이 공부만 하는 아이로 지내고 있었다. 우리 딸이 1년간 이렇게 살아왔구나. 부모에게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안고 가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자꾸 목으로 뭔가가 올라오는 것을 애써 억누르고 있느라 힘들었다. 40분간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상담 전에 딸아이를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보지를 못해 속상해하던 차에, 다행히 상담이 끝나자마자 와이프가 딸과 전화 연락이 닿았다.
"응, 엄마 1층이야."
"와앙~! 엄마 보러 갈래."
잠시 후 1층 밖으로 나온 딸과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가 서로를 발견했다. 양손을 흔들며 힘차게 뛰어오는 딸. 그 밝은 얼굴을 오랜만에 본다. 학교에서는 결코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던 딸이 '엄마'를 부르며 뛰어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 사이로 환하게 웃음 짓는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딸아, 너 참 예쁘구나.
우리 셋은 서로 꼭 안았다. 늦은 밤, 학교 현관 앞 불빛 아래에서 우리 셋이서 앉아본 적이 처음이다. 서로를 안아주는 것이 밥 먹는 것보다 편한 우리 가족인데도 이 시간만큼은 왠지 더욱 새롭고 설렘이 컸다. 잠시 동안의 상투적인 인사가 오가고 딸은 또 공부하기 위해 뒤돌아 뛰어간다.
"우리 딸, 사랑해." 엄마가 외쳤다.
달려가던 딸이 움찔하더니 목이 잠긴 소리로 뒤돌아보며 "러뷰"라고 외친다.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공기가 변했음을 느꼈다. 딸과 엄마 사이에 보이지 않게 막고 있었던 무언의 장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확인했다.
학부모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와이프와 몇 마디 더 나누었다. 1년이라는 혼돈의 시간을 겪으며 우리 딸은 서서히 성장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커주었다. 딸은 이대로만 가면 된다. 나머지는 엄마와 아빠의 몫이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이다. 믿고 기다려주는 것.
딸이라는 나무가 이제 막 꽃봉오리를 틔웠다. 차갑고 냉혹했던 겨울의 시간을 잘 견뎌주었다.
딸의 봄이 왔다. 이제는 봄을 즐길 시간이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결실의 시간이 돌아올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우리 딸도 그렇게 잘 커나가리라 믿는다.
자신만의 레이스를 열심히 펼쳐내고 있는 딸이다.
우리가 러닝메이트로 딸과 함께 뛰어 줄 날도 머지않았다. 딸이 자신만의 경주를 마치고 더 큰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기까지 엄마와 아빠는 기도와 격려로 딸을 응원해 줄 것이다. 딸의 뒷모습이 외롭지 않게 진심을 다해 응원해 주리라.
뭉치면 못할 것이 없는 사람들, 바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