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w Lion Oct 26. 2023

나는 아직도 김광석의 노래를 듣지 못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린 함께 여행을 갈 때나 술잔을 기울일 때 김광석 노래를 자주 듣곤 했다. 그 당시 영화 스텝들 처우가 상당히 열악했던 시기인지라 우리들이 마시는 술은 항상 값이 제일 싼 소주와 막걸리였고, 담배 역시 값싼 디스 플러스였다.


비록 우리의 지갑은 가벼웠으나 함께 영화인의 꿈을 키우며 기울이던 소주 한잔 그리고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한 어둑어둑한 선술집에 김광석의 노래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냥 마시다가도 김광석 노래가 나오면 쓰던 소주가 달았고 값이 싸서 선택한 식은 어묵탕은 술술 넘어갔다.


우린 곧잘 밤이 새도록 주로 영화 현장 얘기나 영화인으로서 품은 빛나는 꿈 그리고 지리멸렬한 현실과 깜깜한 미래, 텅 빈 잔고,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불교, 여행, 지리산과 히말라야, 북미 인디언, 우주의 별과 행성등의 얘기처럼 일반적인 직장에 다니는 우리 나이의 세상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의 이야기들을 주로 나눴던 것 같다.

어찌나 서로가 그렇게 할 말이 많고 대화가 잘 통하던지, 우린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동이 터도 헤어지는 게 아쉬웠고, 이튿날 눈을 뜨면 당연한 듯 또 서로를 찾고는 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이 힘든 세상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소울 메이트였다. 그렇기에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서로가 없는 우리는 결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린 곳은 가평 현등사이다. 전날부터 눈이 많이 내린 그날, 현등사에 가는 차 안에서도 우린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었다. 세상을 떠난 시점으로 보아 그때는 이미 마음으로 모든 결정을 끝내고, 떠나기 전 우리와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동안 울적해하던 그가 먼저 여행을 가자고 한 데다, 흰 눈이 내려 이렇게 좋은 날 다 같이 절에 간다고 바보같이 더 행복해했던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날 슬프게 한다.



전 날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이고
하얀 입김이 뽀얗게 피어오르던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 그는 유달리 하얀 눈처럼 자꾸 해맑게 웃었고 우린 함께 눈 위에 누워 까르르 뒹굴다가 아이들처럼 눈싸움도 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흰 눈처럼 활짝 웃던 그날의 사진을 그의 어머님께 보여드렸더니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어린 시절 이후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아이를 이렇게 웃게 해 주어 고맙다고도 하셨는데 그 모든 말은 또 내 가슴에 아프게 꽂혔다.


그냥 이렇게 다 같이 하하 바보같이 웃으며 살지. 대체 왜 떠났어?’ 허공에 대고 묻지만 대답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의 욕구가 되살아나지 않았다. 한 때는 나의 전부였던 영화. 그러나 나와 내 사랑하는 친구를 절망 속으로 빠뜨리고, 결국은 세상을 떠나게 만든 그 망할 영화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예술인이니 영화인이니 한 껏 멋지게 포장된 그 이면에 온갖 인간군상들이 득실득실 모여 정치질하고 서로를 짓밟고 교활하게 배신하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그 역겨운 곳에 다시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바보같이 여리고 착하기만 한 그 아이를 한껏 이용하고 내쳐서 죽음으로 몰아가고도 버젓이 장례식장에 온 이들과 그들이 보낸 영화사 화환을 집어던지지 못한 내 처지가 바보천치 같았다.


나중에 세상을 떠났을 때 내 장례식에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으면 좋겠는지,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에게 상대가 그 곡을 틀어주자며, 오래전 시답지 않은 얘기를 가볍게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가 말한 곡이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였다.


그래서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의 장례식 장에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작게나마 틀어 놓았던 것 그리고 화장터로 가는 길에 영정사진을 가슴에 꼭 품고 온 마음으로 광명진언을 읊는 것뿐이었다.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별 볼 일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살려고 일을 하고 또 아프면 병원에 가는 내가 미웠다.


용기가 없어서 차마 죽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그렇게 별 볼일 없이 지내며 영화와는 상관없는 일거리를 찾던 어느 날, 내게 뜻밖의 제의가 하나가 들어왔고 그건 다름 아닌 김광석의 뮤지컬이었다.


"김광석?...... 하필이면?...... 대체 왜???"


대체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필 왜 김광석이야. 대체 왜?’ 음악은커녕 그 뮤지컬 제목조차도 듣기 괴로워 망설이던 내게 이건 운명이라고, 떠난 친구를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고 주변인들은 나를 설득했다.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김광석의 노래들로 꽉꽉 채워진 뮤지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00회 공연과 앙코르 공연까지 꼬박 다 채워 일하는 동안 난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내 존재 자체가 수 없이 땅 속으로 처박히는 기분으로 그 시간들을 겨우 버텼던 날들이었다.


리허설 때 배우들의 주요 동선을 체크해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서도 주체 못 하고 객석에 앉아 바보같이 오열을 했다. 객석에 불이 꺼져 아무도 못 봤을 거라 생각했지만 배우중 한 명이 리허설 끝나고 넌지시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물론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너무 감동이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라고 바보같이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매번 공연 중엔 불 꺼진 무대 뒤 구석에서 몰래 자주 울었다.


김광석의 모든 노래가 그러했지만 특히 '그날들‘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공연에 집중하려 노력해도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계절도 마침 추운 겨울, 극장에 오갈 때 나오는 뽀얀 입김과 내리는 하얀 눈을 봐도 우리의 마지막 여행 그리고 그 안에서 활짝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억지로 끌려가듯 매 회 공연을 오고 가며 한 겨울 찬 길바닥에서, 어두운 공연장 구석에서 홀로 눈물을 훔쳤고 그래도 이를 악물고 내게 주어진 100회 공연과 앙코르 공연까지 꽉 채워 일을 끝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다시는 김광석 노래를 듣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