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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 Lion Oct 25. 2023

약사여래불 그리고 만다라

모든 것은 공(空)하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 위치한 사원에 계신 아봉 린포체(Abong Rinpoche)께서 남인도에 위치한 세라 사원(Séra Mey)의 스님들과 함께 프랑스로 만다라 순례 법회를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며칠간의 기다림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하였다.


전통적인 베트남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사찰 '파고드 반한'(Pagode Van Hanh)에서 이번 순례 법회를 위해 흔쾌히 법당을 내어주셨고, 안으로 조심히 들어서자 스님들께서 한참 만다라를 제작 중이시다.



'만다라'는 만다라를 제작하고 해체하는 모든 과정에서 '모든 것은 공하다'는 깊은 가르침 깨우쳐 주는 중요한 수행이다. '만다'는 본질을, '라'는 완성을 의미한다. '만다라'는 이 두 단어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낱말로 불교의 궁극적인 본질인 '보리‘ 즉 깨달음을 상징한다.


6세기 티베트의 한 스승께서는 "깨달음이며, 보리가 완성된 그 상태가 바로 만다라."라고 하셨으며, 6세기 중국으로 밀교를 전한 인도의 역경승 '슈바카라심하'께서는 그의 주석에서 "만다라는 '원'이라는 뜻으로, 우주의 모든 절대적인 근원인 불성이 '원'안에 모여 이로 완벽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깨달음을 얻는다."라고 하였다.


만다라는 불보살님들께서 거처하시는 아름다운 왕궁이자 '깨달음'을 표현한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를 원형 도형의 형대로 표현한 것이다. 만다라에는 '장소'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처가 된 곳, 깨달은 자, 수행의 울타리가 된 곳, 즉 깨달음을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만다라의 제작 과정은 총 네 과정으로 나눠지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한 상태에서 색색의 모래로 만다라를 조성하고 완성이 되면 바로 해체에 들어간다. 공에서 생성, 소멸 그리고 다시 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므로 스님들께서는 호흡을 비롯한 작은 움직임도 주의하시며 온 마음을 기울여 집중하시니 번뇌 망상이 사라진 무아의 경지. 이 역시 깊고 정교한 명상과도 같은 수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Le médecine tibétaine bouddhique et sa psychiatre. Terry Clifford.


스님들께서 조성하고 계신 이 만다라는 약사여래 부처 (Le Bouddha de Médecine)의 만다라이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수명 연장이나 질병 치료 등을 도와주어,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게 도와주시는 부처님이시며 티베트에서는 쌍걔 맨라'(Sangye Men lha)라고 부른다


약사여래의 몸은 ‘라피스 라줄리’라고도 불리는 '청금석'의 짙은 푸른빛으로 빛나며, 왼손은 다리에 얹은 채 치유와 장수의 감로가 담긴 그릇을 들고 계시는데 이는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인 고통 등을 야기하는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들로부터 중생을 보호하고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른손은 '가자(訶子)'나무의 줄기를 잡고 계시는데 이 '가자'는 '티베트 전통 의학'과 인도 고대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식물로 티베트 의학에서는 현재까지도 '약재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런 이 '가자나무‘의 줄기를 쥐고 계신 오른손의 수인은 '위대한 치유'를 상징한다.


약사여래불 수행은 자신과 타인 모두의 치유력을 증가시키는 매우 강력한 수행일 뿐만 아니라 애착, 증오 및 무지의 내적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수행이며, 신체 질환의 치유와 정신적 질병 등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들을 정화하고 고통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수행이다.


수행법은 약사여래불을 시각화하는 명상법, 진언 암송, 만다라를 관하는 등의 방법 등이 있다. 이렇게 정성스레 제작되는 만다라를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정화와 치유의 효과가 크다고 한다.


만다라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약사여래의 만트라 '데야타 옴 베칸체 베칸체 마하 베칸체 라자 싸무 가떼 소하'를 나지막이 암송하며,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만다라가 완성되고, 해체 전 아봉 린포체와 만다라를 조성하신 세라메이 스님들 그리고 통역을 맡아주신 프랑소아즈 왕 (Françoise Wang)이 함께 이 소중한 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프랑소아즈는 저명한 프랑스인 티베트 불교학자로 내가 공부하고 있는 기관에서도 티베트어와 프랑스어 동시통역을 맡아 주시는데, 이번에도 감사하게 린포체 님과 개인 면담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다.


린포체를 친견하고 수행에 대한 조언을 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린포체 님께서는 내게 세세생생 불법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축원과 함께, 손목에 부정적인 에너지로부터의 보호와 치유를 상징하는 매듭을 감아주셨다. 앞으로 남은 모든 삶이 오로지 바르게 수행하는 삶이 되기를, 그래서 세세생생 불법을 만나 깨달음으로 향해 갈 수 있기를 거듭거듭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봉 린포체 (Abong Rinpoche) 께서 전해주신 메세지.
프랑소아즈 왕 (Françoise Wang), 그녀가 번역한 사성제


린포체께서 금강저를 손에 쥐시고 사방으로 만다라를 가르며 해체가 시작된다. 이토록 며칠간 정성스레 조성한 아름다운 만다라가 결국 실체 없이 사라진다.



만다라는 공에서 생성을 거쳐 순식간에 소멸되어 다시 공으로 돌아가고 만다라를 이루던 색색의 고운 모래는 모두 뒤섞여 아름다운 빛을 잃었다.


이처럼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며 잠시도 같은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꿈이나 환영처럼 실체가 없다는 것을, 항상불변(恒常不變) 한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며칠간의 과정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만다라 해체 후 모래는 모두 작게 소분해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배분하고, 나머지는 이렇게 모두 강에 뿌려 흘러 보내는 것으로 의식은 끝이 난다. 며칠 동안 온 마음을 기울여 정성스레 만들어진 아름다운 신의 궁전 만다라가 한순간에 해체되어 강물로 사라진다. 물의 흐름 따라 무심히 흘러 흘러 더 큰 강을 만나고 또 더 넓은 바다로 갈 것이다. 그렇게 돌고 돌아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이렇게 몸소 체험하며 내 마음속 집착과 욕심도 만다라 모래와 함께 강물로 흘러 보낸다.


'데야타 옴 베칸체 베칸체 마하 베칸체 라자 싸무 가떼 소하'.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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