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무진장 좋아하나 봐요"
기분 좋은 의사소통
나는 강아지를 세 마리나 키우고 있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윗집에서 한 마리, 옆집에서 한 마리 얻다 보니 텃밭에서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나름 다 사연이 있는 강아지이다. 출근 전 산책을 시키고 밥을 주고 있다. 늘 묶여있는 안쓰러움에 시간 나는 대로 밖에서 대소변을 보게 한다.
그러다 보니 텃밭 주변에 농사짓는 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여름이라 이른 아침 밭일을 한다. 9시 까지는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6시에는 출발해서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
오늘도 다름없이 산책을 시키고 있는데, 6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밭일을 하다 말고 “무진장 개를 좋아하나 봐요”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기분이 왠지 상했다. “네, 무척 좋아해요”라며 매우 명랑한 척, 반응을 보였다.
평상시 산책시키다 나에게 건넸던 주변 사람들의 인사는 “매일 산책시켜 주니 강아지들이 많이 좋아하겠어요”, “주인을 잘 만나, 복 많이 받은 강아지네요.” 등이다. 또한 강아지가 예쁜지 약간은 가격이 있을 도톰한 간식을 건넨다.
사람이 어떻게 말하냐에 따라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내뱉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진장 개를 좋아하나 봐요”라는 말에 왜 나는 기분이 상했을까?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칭찬도 기술이다. 진심이 고스란히 담아 있지 않는 칭찬을 보면, 칭찬의 내용은 5인데, 10으로 과대 칭찬하는 것도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또한 “무진장 좋아하나 봐요”라는 말은 왠지 그 뉘앙스는 상대를 평가하는 느낌이다. 강아지로 인해 미치는 영향력을 언급해야 한다. “강아지가 행복하겠어요. 매일 산책을 나가니~” 강아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 건강을 위해 강아지를 산책시킬 수도 있다.
“강아지를 좋아해 시집을 못 가는 것 같다”라는 전 직장 상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때 겉으로는 웃음 지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론은 대화할 때 평가는 자제하고 눈에 보이는 관찰을 통해 나의 느낌과 욕구를 바람을 말해주면 될 듯하다. 평가에는 도덕적 판단의 중지가 이루어져야 하고, 비교하지 말아야 하고, 느낌과 생각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에서 크리슈나무르티는 '평가가 들어가지 않는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는 글귀가 매우 마음에 와닿는다. 저자는 평가와 관찰을 구별한 의사소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빴던 것은 "당신은 무진장 개를 좋아하는군요"라는 평가가 들어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 느낌, 의도나 욕구에 대해 자신이 추측한 것만이 사실이라고 암시하는 말이 들어갔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상한 듯하다. 내가 매일 강아지를 산책시킨다고 해서 무진장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도 있다.
또한 평가자가 자신이 그렇게 평가한 까닭을 표현하지 않을 때이다. "강아지를 매일 운동시키는 것을 보니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나 봐요"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실제로 관찰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좋다.
참 이상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말한 그분은 눈길을 피하고 나 또한 인사가 건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