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 승객

by 길이

금요일 오후 5시의 공항 출국장은 동대문 지하상가나 다를 바 없다.

하루 중 항공기 이착륙이 가장 많은 시간대라 승객들이 어마하게 몰리고 있었다.

북적대는 인파들로 출국심사대도, 면세점도, 탑승구도 그리고 환승카운터도 대기선이 길었다.

정신없이 환승객을 수속하는 최 대리의 카운터 앞으로 작은 체구의 동남아 청년 고객이 왔다.


“ 안녕하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 ... “


그는 손에 여권과 탑승권이 이미 들고 있었다.

' 영어를 못하나? ‘

“ 고객님, 여권과 탑승권을 보여주시면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고 우리에게는 세계 공통어 바디 랭귀지가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의 여권과 탑승권으로도 충분히 뭣 때문에 카운터에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짬밥 최 대리는 그의 손에 들고 있던 탑승권은 이미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난 탑승권임을 확인했다.

25살의 베트남 국적의 그는 미국 시카고에서 한국을 거쳐 베트남 하노이로 환승하는 스케줄이었다.

탑승권에는 누군가가 친절하게 빨강 색연필로 탑승구 번호와 시간을 표시를 해 줬음에도 그는 제시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가 타려고 했던 하노이행 비행기는 미국에서부터 부친 그의 수하물을 화물칸 깊숙이 있어 하기 하느라 십 분이나 지연되어 출발하였다.

‘진짜 뱅기 놓치는 놈들은 위약금을 아쭈 빡세게 먹여야 해. 젊은 눔이 정신을 어따 두고, 으이그~.’


최 대리는 탑승권 받고 노쇼를 내는 승객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특히나 수하물까지 부친 경우에는 그 수하물을 하기하느라고 닫힌 화물칸 다시 열어서 컨테이너 내려서 수하물 찾고 다시 실고 하는데 걸리는 낭비를 생각하면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다.


승객 한 명의 부주의로 십 분이 지연되면 비행기에 타고 있는 나머지 300명 가까운 승객들은 무슨 죄인가, 300명 곱하기 10분의 답은 민폐이다.

반감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대하는데 가만히 보니 그의 눈빛이 약간 이상하다.


‘ 어라~ 이상한데?’


영어를 이해 못 해서 멍하니 웃으며 최 대리를 본다고 하기에는 분명 보고 있는데 보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뭐 그런 게 느껴졌다.

최 대리는 알아듣던지 말던지 다시 승객에게 왜 비행기를 놓쳤는지 물어본다.


“ 고객님, 이 비행기 표는 환승객을 위한 스페셜 요금으로 구매하셨습니다. 내일 하노이 편을 스텐바이를 해야 하지만, 타게 되더라고 추가 비용을 내야 합니다. “


노쇼 낸 것에 대한 불이익에 대해 이런저런 안내를 시작하는데 그는 맑게 웃고만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좌석이 없어 내일도 모레도 못 갈 수 있다는 것을, 스케줄 변경에 대한 추가 요금이 많다는 것을.

버락 오바마의 분짜 외교 덕택인지 한국인도 받기 어려운 미국 워킹비자를 소지한 그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웃으면 안 되는 이 상황에서 맑게 웃고만 있는 그가 더 이상했다.

최 대리는 감당할 수 없는 뭔가가 엄습해 오는 촉이 왔다.

무전기로 직원들의 히어로인 매니저 김변수 차장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김 차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이든 해결해 내는 만능 해결사이다.

항공기 출발시간 임박했는데도 안 나타나는 승객이 있으면 면세점에서 정신없이 명품 쇼핑의 신세계로 빠져버린 승객을 뒤져서 찾아내고, 정비로 인해서 비행기가 지연되어 탑승구 주변에서 승객들이 농성 수준으로 항의하면 앞으로 나가 총받이? 도 서슴지 않는 히어로이다.


열심히 일하고 업무에 대한 지식도 누구보다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외모 가꾸기를 포기한 김 차장이 매니저 일만 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서비스업이라 여기서는 외모도 능력인가 보다.

그러가나 말거나 김 차장은 업무 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머리에 돋보기 같은 안경은 늘 뿌옇고. 찌든 담배 냄새를 달고 다니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객실 승무원 출신이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그는 출근하면 책상 서랍에서 정관장 한 스푼 떠먹고, 뭐가 그리 바쁜지 무전기 하나 쥐어 잡고 50번까지 탑승구가 있는 큰 공항을 휘저으러 출타한다.


직원들이 무전기로 SOS 만 치면 이 넓은 공항에서 홍길동처럼 나타나 해결해 주는 김 차장은 존경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여하튼 해결사 김 차장이 환승카운터에 나타났다. 다른 매니저가 아닌 김 차장이 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SOS 쳐봤자 도움이 안 되는 상급자들도 많지 않은가.

우리들의 히어로 김 차장은 상황 설명을 들고, 승객에게 영어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역시나 못 알아듣고 웃고만 있는 그에게서 의사소통의 한계를 느낀 김 차장은 본인만의 도라에몽의 마법 같은 미니수첩을 꺼낸다.

수첩에 메모해 두었던 베트남 무료통역 서비스센터로 전화를 걸어 설명한 후 승객에게 전화기를 갖다 댄다. 한참을 통화한 승객이 김 차장의 귀에 그 전화기를 갖다 댄다. 그 광경이 너무 정감 있게 보여 꼭 다정한 부자지간 같다는 생각은 아마 환승카운터 직원들 모두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통화를 끝낸 김 차장은 작고 젊은 승객을 측은하게 보면서 미국에서 2년 정도 일했고, 베트남 호찌민행 탑승구에서 하노이로 가는 것으로 잘못 알고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놓쳤다는 것을 직원들에게 알려주었다.

다행히 승객의 크로스백 안에는 세관 법에 걸릴 만큼의 달러가 수북이 들어 있었고, 다음 날 호찌민행 탑승권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경험 많은 김 차장은 승객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내일 태우고 싶은 마음에 무료 통역 서비스센터에 다시 전화해서 승객에게 내일 낮 12시까지 환승카운터로 오면 탑승권을 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모든 걸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그는 ‘끄떡끄떡’ 하며 두 손 모아 뭐라고 인사하고 그날은 헤어졌다..

다음 날 약속시간보다 일찍 승객이 나타났다. 공항 보안직원과 함께 말이다.


“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승객에게서 너무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가,,,”

“ 넹? “

“ 여기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온 승객이니까, 승객을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예? “

“ 참고로 신고가 접수되어 승객은 동선을 CCTV로 확인해 보니, 스무디 음료와 24번 게이트 옆에 있는 식당코너에서 오징어 버터구이 한 봉지를 구매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

“ ??? “

그렇게 2인 1조의 보안 직원들은 바지에 똥 싼 승객을 환승카운터에 투척하고, 친절하게 왜 쌌는지 원인까지 알려주고 튀었다. 정말이지 승객이 서 있는 주변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환승카운터의 직원들은 피하기 시작했고, 주변 외국인 승객들도 코를 잡고 불쾌한 표정들을 지어대니, 또 우리들의 히어로 김 차장을 무전기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상이 아님을 김 차장은 그때서야 제대로 알았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싸고 싶으면 싸 버리는 머릿속이 꽃밭이 되어있는 이 해맑은 승객을 누군가 하노이행 항공기에 태울 때까지 곁에서 돌봐야 하는 심각한 승객임을 말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이 간간히 발생한다.

혼자 여행하는 승객이 비행기를 놓치고 내적이던 외적이던 어딘가 아파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말이다. 이럴 때 항공사는 표를 팔았다는 이유로 돌보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긴다.

고약한 냄새에, 정신도 온전치 못한 그를 김 차장은 처음에는 난감해하더니 역시 프로답게 그의 손을 잡고 공항 무료 샤워실로 데려갔다. 그도 잘못한 걸 아는지 아빠 손에 끌려가듯 얌전히 끌려갔다.

공항에서 환승객을 위한 무료 샤워실이 있다.

김 차장은 샤워실에서 타월과 비누를 구매해서 직접 그를 씻겼다.

본인 안경도 닦지 않는 김 차장이 남을 씻기다니, 그것도 바지에 똥 싼 성인 남자를,,,

마치 테레사 수녀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김 차장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말끔해진 그가 김 차장의 손을 잡고 다시 환승카운터에 나타났을 때, 김 차장도 깨끗하고 그도 깨끗하니 마치 목욕탕에 금방 나온 부자 같았다.

씻을 때 무슨 우정이 쌓였는지, 그는 김 차장의 순한 양이 되어 환승카운터 주변을 떠나지 않았고, 하노이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얌전히 있었다.

말도 없고 웃기만 하는 그를 김 차장이 손을 잡고 하노이행 비행기 안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기내 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도 착용시켜 주었다. 물론 승무원에게 잘 케어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쿨하게 돌아서는 김 차장에게 그가 20불을 건네주었다. 당연히 그런 걸 받지 않는 김 차장이 받았다.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돈을 벌고자 꿈의 선진국으로 간다.

한국인도 발급받기 어려운 미국 워킹 비자를 왜 영어도 못하는 자그마한 베트남 청년에게 허락했을까?

언어도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무슨 고초를 당하면서 일을 했기에 크로스백 안에는 달러는 가득이고, 정신은 미국에서 잃어버렸을까?


‘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괜찮을까? 마음이 쓰인다.’

김 차장은 그가 준 행운의 20달러를 도라에몽 수첩 맨뒤에 기념화폐처럼 끼워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