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팬
2017년 가을,
하늘도 높고 공항 천장도 높고 적당히 한가한 오후의 출국장이다.
어마했던 여름 성수기는 지났고, 성수기로 인해 예약이 어려웠던 환승객이 조금씩 늘고 있는 늦가을을 환승카운터의 직원들도 즐기고 있었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봤어? 나 담주에 애들이랑 가려고 하는데 어때? 갈만해? “
김 과장은 오래간만에 초등학교 1학년된 쌍둥이 녀석들이랑 여행 갈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많았다.
그동안 쌍둥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숙식제공과 놀이가 완벽한 리조트가 있는 괌, 푸켓, 하와이만 가봤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 곳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과장님, 완전 좋아요 공룡도 진짜 같이 움직이고, 해리포터 성도 있고, 미니언즈 퍼레이드도 애들이 좋아할 거예요. 꼭 가봐요. “
남편이 유명한 게임회사에 다니는 정대리는 초등학교 6학년, 1학년 아들 두 녀석과, 아직 유모차를 벗어나지 못한 딸과 함께 일본, 홍콩, 미국 LA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섭렵한 대단한 슈퍼맘이다.
특히, 일본은 마실 가듯이 자주 여행을 가는 정대리의 추천이니 믿어 의심치 않고 검색을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퍼레이드 인파 속에서 아들 한 녀석의 손을 놓치는 어마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오사카 시내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가는 전철 노선을 검색을 하려는데, 때마침 오사카행 탑승권을 갖은 승객이 카운터로 왔다.
‘출발 시간이 30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왔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승객은 한국 여권과 오사카행 탑승권을 내밀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비행기 못 탈 것 같아요. “
승객이 건넨 여권과 탑승권을 확인한다.
여권에는 일본 비자가 있었고, 여러 번 다녀온 출입국 심사 스탬프도 찍혀 있었다.
단, 항공권을 어제 비싼 가격으로 구매했다는 것과 부친 수하물이 없다는 것이 굳이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고객님, 어제 구매하신 항공권이네요. 정확하게 어떤 사유로 취소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
승객이 출국을 취소하려면 항공사에서 서류를 작성해서 CIQ(Customs, Immigration, Quarantine)에 제출해야 하는 업무상 필요한 절차였다.
“일본에 집을 계약하러 가려했는데, 계약이 파기되어서 갈 필요가 없어졌어요. “
퉁퉁한 체격에 긴 생머리의 그녀는 스포츠 전문기자나 쓸 것 같은 고가의 렌즈의 긴 대포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기자이신가 봐요?”
“아닙니다. 아직 학생입니다. 일본에서 아직 공부를 못 마쳐서요. “
김 과장은 괜히 불필요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의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학생이 갖기에는 너무 고가품이고, 비싼걸 왜 가방에 넣어 다니지않고 흠집 나게 메고 다니는지 의아했다.
거기다가 부친 수하물은 없고 휴대한 수하물은 에코백만 있다니, 뭔가 이상하다 생각은 들었지만 의심할 만한 의도는 캣치가 되지 않았다.
”고객님, 면세점에서 구매하신 물건이 있으시면 환불하시고, 환불한 영수증 가지고 다시 카운터로 오시기 바랍니다. 세관에 제출해야 합니다. “
“산 거 없어요. “
면세품도 안 사는 30대 그녀를 참으로 검소한 승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항공권을 어제 비싸게 구매한 것도 그렇고, 어깨에 메고 있는 기관총 같은 고가의 카메라도 그렇고, 김 과장은 다시금 여권을 세심하게 보기 시작했다.
다시 보니 출국을 증명하는 비자란의 스탬프 위에 ’VOID‘로 처리되어 있는 스탬프도 여러 개 있었다. 그만큼 출국취소를 했다는 것이다.
’브로커인가? 뭐지 이 사람?‘
승객에게 다시 물어본다.
“고객님, 여권에 출국 취소한 경우가 몇 번 있었네요? “
“... 네 “
“무슨 사유로 그러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 … “
옆에 정 대리가 김 과장에게 눈짓으로 다른 카운터에 있는 20대 한국인 승객들을 가리킨다.
“고객님, 이렇게 출국 심사까지 다 마치고, 고의적으로 홍콩행 비행기를 취소하면 어떡합니까?
CIQ와 보안 문제 그리고 항공사 업무에 상당한 방해를 주는 겁니다.
벌써 몇 번째 출국 취소를 하셨기에 여권에 VOID 스탬프가 이렇게 많습니까? “
“ … “
열정 넘치는 20대 신입 남직원은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카운터에도 옛띤 얼굴의 여고생이 승객이 있었다.
“고객님, 지불하신 카드 보여주시겠습니까.? “
“엄마 카드라 지금 없어요. “
“어머님은 나리타행 항공권을 구매한 것을 알고 계십니까?
환불 문제로 인해 어머님께 안내할 것이 있으니, 어머님과 전화연결 부탁드립니다.
출국 심사받고 취소하면 법무부에 업무방해 죄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
“…”
천사표 차 대리도 곱게 말하지 않고 있었다.
김 과장은 그제서야 외국인 승객들이 주로 오는 환승카운터에 온통 한국인 여자 승객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
눈치 없는 김 과장이 상황파악을 전혀 못하는 것을 본,
눈치 빠른 정 대리가 김 과장을 구석으로 끌고 간다.
“오늘 아이돌 그룹이 미국 공연 가는 거 보겠다고, 밖에 카운터는 난리가 났어요. 이 사람들도 진짜 비행기를 타려는 게 아니라, 예약 가능하고 비자 필요 없는 나라로 표 사서 출국장 안까지 따라 들어온 거예요.”
헐~
자세히 보니 전부 대포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서른 넘은 성인까지 다들 아이돌 그룹을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집념으로 출국장 안까지 들어온 것이다.
예전에 기내에 탄 욘사마를 보고 일본 승객이 소리를 질러, 일순간에 일본인 승객들이 일반석에서 비즈니스 쪽으로 몰려간 상황이 있었다.
항공기의 평행을 이루는 중심 지점인 CG(Center of Gravity)가 앞쪽으로 쏠릴 정도로 우르르 몰려와 승무원과 지상직원들이 다급하게 승객들을 후퇴시켰던 적은 있지만 이건 너무하다.
출국을 취소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첫째, 세관은 면세점에서 구매한 것을 환불 또는 구매내역 없음을 확인해야만 통과를 시켜준다.
둘째, 출입국 심사관은 재심실이라는 무서운? 곳에서 출국 사유를 묻고 따져서 출국기록을 취소해 준다.
(외국에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 특히 선진국은 어리버리하게 인터뷰를 하면 재심실로 보내서 다시 인터뷰를 한다. 이때 입국사유가 불충분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입국거절을 하고 바로 타고 온 비행기로 리턴을 시켜 버리는 무서운 곳이다.)
셋째, 보안검색장에서 다시 검색 받고,, 세관에서 한 번 더 면세품이 없는지 확인 후, 검역에 서명해야 드디어 출국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항공사 직원이 승객과 동행해서 처리를 해야 하는데, 시간 많이 걸려 하던 업무에서 제외해야 하니 인력 손실도 발생한다.
대부분 가족이 위독하다거나, 급박한 상황으로 출국 취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항공사 직원이 전동차를 태워가면서 서둘러 출국 취소를 도와주지만, 이번 경우는 진짜 욕이 절로 나온다.
“ 고객님, 출국취소는 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권에 출국을 취소한 스탬프가 이렇게 많은데 오늘 안타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 “
가만히 보니 이전에 일본에 다녀온 것도 자꾸 출국 취소하면 의심을 받게 될까 봐, 몇 번은 다녀오는 잔머리를 쓴 것 같다.
상황 파악이 된 김 과장은 승객에게 통보한다.
“ 말씀을 안 하시겠다면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본인이 직접 말하시고, 일단 저기 의자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녀를 포함해서 그렇게 아이돌 그룹을 보겠다고 출국장까지 처 들어온 자매 같은 외모의 골수팬들을 한 시간 넘게 앉혀 놓고 다른 승객들의 수속을 도왔다.
김 과장은 두 시간 정도 냅 둘 작정이었다. 버스도 아니고 나 원 참,,,
한 시간 반쯤 지나 그녀들을 불렀다.
출국 취소 서류를 작성하는데 뻔한 거짓말들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 갑자기 몸이 너무 안 좋다. 해외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 오지 말란다. 중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왔다.”
말하는 그녀들도, 듣는 직원들도 다 거짓임을 알면서 출국취소를 진행해야만 했다.
운송업이지만 서비스가 중요한 직업이라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업무 방해를 딱히 어찌할 수 없음에 부화가 치미는 것을 누르고 CIQ 지역으로 갔는데, 이미 여러 항공사에서 몰려온 같은 류의 출국취소 사생팬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공무원들은 그녀들을 냅두고 다른 급한 일 먼저 하고, 안 급한일도 먼저 하면서, 자국민인 그녀들 보다 불법체류로 강제퇴거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먼저 심사하며 그녀들을 아주 오랫동안 출국 취소 심사를 해 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으로 벌을 주었다.
뭐 그래봤자 그녀들은 또 나타날 것을 CIQ는 알고 있었다.
오전에 들어간 출국장을 저녁 무렵에야 나올 수 있었지만, 그녀들은 미안하다는 인사 대신 쫙 째려보고 떠났다. 천만다행으로 욕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녀들의 오빠들 빼고 뵈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가질 수 없는 우상에 대한 집착이 과해서 사생팬이 되어 버린 코끼리 떼 아니 그녀들은 언제쯤 창피한 짓이라는 걸 알까?
아까운 청춘들이여!
제발 가질 수 있는 진짜를 사랑하고,
제발 출국장 안은 그만 들어와라!
그 후로도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