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모여 비행기가 되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by 길이

공항에는 여행의 대한 설레임이 가득 찬 사람들로 늘 화려하다. 하지만 때로는 아픔의 장소이기도 하다.


1층 입국장은 환영, 만남, 재회, 상봉, 귀국 뭐 이런 기쁜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3층 출국장 입구 앞에는 웃으며 헤어지는 배웅도 있지만, 안녕을 쉽게 놓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떠나 보낸 출국장 그곳을 한참을 응시하다가 겨우 뒤돌아 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떠나보낸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요란스럽게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을 배웅하려고 대가족이 모여있다.

파이팅을 구호로 외치며 웃고 있지만, 눈물을 몰래 훔치는 이들도 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은 말라버린 나뭇가지 같다.

겨우 붙어 있는 흙빛의 생명색으로 몸을 가누고 있는 모습에 왜 가족들이 몰래 눈물을 훔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젊은 연인이 포옹을 하고 있다.

해외로 파병 가는 한국군인과 외국인 여자친구가 뜨겁게 포옹을 하고 있다.

많은 인파 속에 그들은 너무 아름답고 , 슬퍼 보인다.

남자는 큰 배낭을 짊어지고, 여자는 트렁크를 옆에 두고, 각자의 비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포옹을 하는 연인은 이라크와 태평양의 거리만큼 이미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 애틋해 보인다.


할머니가 홀로 앉아 계신다.

고우신 할머니가 인적이 드문 곳에 앉아 종이컵을 나열하고 계신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에게 차를 대접하고 계시는 모습 같다.

종이컵 안에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는데 정성스레 두 손으로 종이컵 여러 잔을 내어 놓으신다.

마치 귀한 분들 대접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내어 놓고, 다시 포개기를 반복하신다.

미국 간 아들이 오늘 올 거라고 하시며, 내일도 미국 간 박사 아들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요상한 여인이 카운터에 나타났다

뭐든지 두 겹을 껴입은 여인이 카운터에 와서 말을 걸어온다.

모자도 두 개, 상의도 두 개, 하의도 두 개, 양말도 두 개, 장갑도 두 개, 가방도 두 개, 선글라스도 하나는 모자 위에, 하나는 쓰고 있는 요상한 차림으로 말을 걸어온다.

“ 그 새끼 타고 간 비행기 맞잖아요! 그 새끼한테 할 말이 있다구요! 당장 여기 데려와요! 숨기는 거 다 알아요! ”

매일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요상한 두 겹의 의상으로 나타나 요란하게 떠들다가 요란하게 끌려간다.


매스컴을 탈 정도로 유명한 분이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공항을 떠나지 않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직원들 사이에 유명한 분이 있다.

까만 비닐봉지 같은 망 안에 길어버린 머리카락을 넣어두고 늘어난 살림은 카트기 두 개에 넘쳐나게 담아 하나는 지정석에 두고, 하나는 입국장과 지하 식당가를 당당하게 끌고 다니며 누구보다 바쁜 사람처럼 다니는 분이다.

입국장의 설치되어 있는 대형 티브이는 자신의 전용 이 되어 외국채널을 틀어놓고 열심히 뭔가를 쓴다.

온통 영어와 일본어로 빼곡하게 적고 있는 그분이 나중에 티브이에 나오는 걸 보니 ‘이대 나온 여자’였다.

그 행동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살림이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결국 공항에서 강제로 사라져 버렸다.

무엇보다 몸에 달고 다니는 냄새의 범위가 공항에서는 위험 수준으로 다다른 것 같다.


몽골 여인이 환승카운터에서 울고 있다.

아들의 유골함을 안고 조용히 울고 서 있다.

미국에서 돈 벌어 오겠다는 20대의 아들의 죽음을 안고 왔다.

몽골은 사냥철이라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오는 사냥꾼들이 비행기를 차지해 버려, 아들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그녀는 낯선 땅에서 발이 묶여 울고만 있다.

한국에서 그녀의 슬픔은 3일이 넘도록 이어졌고, 결국 북경행 비행기를 타고 기차 편으로 몽골을 가는 것으로 한국을 떠났다.

힘들게 돌아간 고향에서는 그들의 장례풍습대로 새의 일부가 되어 하늘로 훠이훠이 날아가 모든 것 떨쳐버리고 자유로운 새가 되길 기원한다.


공항으로 모이는 사연많은 아픔들도

비행기에 실어 훠이훠이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