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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탁구, 잘 가 애경

by 길이


외관상으로 봐도 심하게 부은 애경이의 몸에 의사의 처방으로 약물이 링거에 투입되었지만, 잠시 후 애경은 호흡곤란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응급상황이었다. 다급해진 의사는 걸어서 십 분 거리인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시켰다.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잘 받아낸 의사가 무엇을 놓쳤길래 세상은 온통 예수 탄생의 축복에 들떠 있는데, 아기를 낳은 지 몇 시간이나 지난 산모에게 갑자기 응급상황이 발생한 걸까.

자정 무렵 응급실로 실려온 애경은 어떤 마지막 밤을 보냈는지 모른다. 제왕절개로 상처 입은 몸에 얼마나 더 많은 바늘이 더 꽂혔는지, 다급해진 의료진의 심폐소생술로 몸은 얼마나 더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애경이 누구인가. 악바리 애경이 이대로 예고 없이 포기할 산모가 아니다.


이건 내 생을 건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세트다. 듀스에서 한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의 서브권이다. 마지막 한 점이 될 수 있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니 만큼 침착해야 한다. 박애경.

집중하자. 넌 이길 수 있다.

이 고비를 이겨내서 양팔 활짝 벌려 보란 듯이 두 아들을 번쩍 안아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치자.

내 몸에 무슨 페이크를 써서 이렇게 벌집에 들어간 것처럼 퉁퉁 부어오르게 만든 건지 산부인과 의사는 어디에 있고, 다급해진 응급실 의사만 심장충격기로 식어가는 심장에 차가운 기계로 지지려고만 하는 거야. 내 입에 산소마스크를 씌워 놓았다고, 내 눈이 잠시 감겨 있다고, 내가 모르는 줄 아나 본데, 난 지금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 충분히 역전을 할 수 있어.

분명 운명은 날카로운 한방 서브로 날 보내버리려고 마지막 작전을 쓸 거야. 이 매치 포인트만 넘기면 다음 듀스에서는 반드시 이긴다. 서두르지 말자. 운명이 강력한 서브를 넣는 순간의 변화구를 잘 캐치해서 리시브하자.

박애경 이건 인생 마지막 승부야. 넌 할 수 있어.


탁구를 관두고 시작했던 또 다른 세계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행복했다. 학업 때문에 떨어져 지낸 시간은 많았지만 남편은 항상 따스했다. 늦게라도 시작한 공부 또한 미래의 교수를 꿈꾸었던 애경에게 좋은 기회였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한 지금을 포기할 박애경이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어나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이 말도 안 되는 응급상황을 이겨낼 것이다. 악바리 박애경은 다시 또 일어날 것이다. 반드시.

드디어 마지막 한방 서브가 들어왔다. 앗! 그건 인간의 범주의 서브가 아니었다. 애경의 라켓이 닿자마자 공은 네트에 힘없이 꽂히고 말았다. 운명의 신은 애경에게 죽음이라는 잔인한 패배를 던졌다.

어릴 적부터 매일 밤 두 손 모아 무릎 꿇어 기도드렸던 주님은 운명을 다한 애경에게 냉정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떠나야 하는 피 끊는 애경의 간절한 기도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오~ 주여,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첫째가 있습니다. 세상에 내놓은 지 하루도 되지 않은 핏덩어리 둘째는 젖 한번 물리지 못했습니다. 왜 이리 가혹하게 어린 새끼들을 어미와 찢어놓으려 하십니까.

오~ 신이시여,

전 이대로 떠날 수가 없습니다. 제발 제 아기들에게 엄마를 뺏지 말아 주시옵소서. 사는 동안 저는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이대로 떠날 수 없습니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무런 인사도 없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제 심장은 멈췄다고 하지만, 아직 듣고 있습니다. 낯선 기계음과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리고 있습니다. 아기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아빠를... 엄마를… 제발 그들의 목소리라도 듣게 해 수소서.

사랑한다는 말... 안녕이라는 말이라도...


운명은 일방적이었다. 그 밤이 이승의 끝이라며 냉정하게 새벽 동이 트기 전 애경을 자신의 육신에서 떠나게 했다. 동이 트기 전 차가운 시트에 눕혀져 한 겨울 영하의 영안실로 옮겨졌다.

신은 인간으로서 나무랄때 없는 애경을 버렸다. 삶과 죽음 중 애경은 죽음으로, 가엾은 새끼 양 두 마리는 어미 없이 세상에 내쳐졌다.


1971년 부처님 오신 다음 날, 똘망똘망한 두 눈에 보조개가 야무져 보이는 아기가 태어났다.

열 살에 처음 본 탁구에 반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작은 체구의 한계를 극복하며 국제대회에서 대단한 실력을 펼쳤다. 은퇴 후 스포츠 전문지도자의 꿈을 키우며 학업과 결혼 그리고 연이어 아들을 출산하며, 인생에 단 한 번도 휴식기를 가진 적 없이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다. 그리고 2000년 12월 성탄절 새벽 만 29세의 나이로 영원한 강제 휴식에 들어갔다.

애경은 원통한 죽음을 당했다. 배 속에 아기만 꺼내놓고 너는 가라는데, 이승에서 발길을 돌리라는데, 떠날 수 있는 어미가 누가 있을까, 잔인한 인간 생의 끝이었다.


애경의 결혼식 때 웃으며 만났던 동료들이 2년 만에 그녀의 장례식에 통곡으로 다시 모였다. 젊은 여인들의 통곡이 3일 밤낮으로 장례식장에 울러 퍼졌다. 애경의 엄마는 손자의 탄생을 기다리다 맞게 된 날벼락에 넘어가고 말았다. 애경의 아버지와 애경의 남편은 사색이 되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애경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장례식장의 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국화꽃 위에 활짝 웃고 있는 애경의 영정사진을 보고 통곡을 하지 않을 문상객이 없었다. 어떤 이는 털썩 주저앉아 울면서 너무 애통해 땅을 쳐대며 가슴을 쳐대 봐도,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있는 애경은 같이 울어줄 수가 없었다.

입관식을 거행하는 인간들의 의식에 외할머니가 첫째 손자를 데리고 관 속에 누워있는 딸에게 들이민다. 지난봄 홍조 띤 얼굴로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며 첫째를 안고 있었던 애경의 얼굴은 이제 이생을 보내고 날아가야 하는 하얀 천사의 얼굴로 누워있었다. 왜 하필 하얀 수의를 입혔는지, 정말 곧 하늘로 승천할 천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 없는 어미의 영혼을 누가 달래서 저승으로 보낼 수 있을까,


“ 봐라 어여 봐라. 니 엄마다. 엄마~하고 함 불러봐라. 그래야 니 엄마가 벌떡 일어나지.

애경아, 니 새끼 왔다. 뭐하노 어여 일어나서 니 새끼 안아야지. 애경아~ 내 딸아, 오뚝이 같은 내 딸아, 일어나 보거라. 애경아~ 제발… 니 새끼들 우야라고, 내는 우짜라고, 니 하고 싶었던 교수도 해야지. 니 이렇게 떠벌려 놓고 안 할 아가 아니잖아. 어여 일어나라. 니가 벌려 놓은 게 이리도 많은데 우예 눈을 감노.

참말로 와 이라노. 제발 내 딸아 일어나라. 애경아... 가여운 내 새끼... 귀한 내 새끼... “


애경의 엄마가 가슴을 치다가, 바닥을 치다가, 내 새끼 살려내라고 보이지 않는 의사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다 또 쓰러지셨다. 두 눈 감고 못 들은 척 누워있는 애경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자지러지게 우는 첫째를 친할머니가 손주를 외할머니 품에서 뺏어 자리를 피했을 때 애경은 영혼까지 찢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떠날 수 없는데, 이대로는 갈 수 없을 것인데, 남은 이들의 통곡과 절규 속에 애경은 입관되었다.


'이건 거짓말이야. 현실감이 너무 없잖아. '


찢어지는 가슴을 부둥켜 안고 이진이는 주저앉고 꺼어억 꺼어억 뜨거운 울음을 삼켰다. 생에 처음 맞이한 죽음의 얼굴이 사랑하는 애경이라는 것에 충격, 원망, 미안함 그리고 함께 한 추억들로 인해 심장에 피가 쏠리는 통증이 몰려왔다.

죽을 작정을 몇 번을 반복했던가. 스무 살 못 마시는 술에 수면제까지 먹으려고 작정을 했던 이진이에게 또 한 번 따뜻한 품을 주었던 내 친구.

첫사랑의 배신에 전화 부스 안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이진이를 대신해 번호를 누르고 혼을 내줬던 내 친구.

갑갑한 실업팀 숙소 생활, 토요일 밤 각자의 동전이 든 돼지저금통을 들고 고스톱으로 밤을 새우며 낄낄댔던 연희동 숙소에서의 작은 행복.

어릴 적 어두운 밤 둘이 손 잡고 집으로 가는 길의 밤하늘 별자리 찾기.

그렇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같이 시작한 탁구가 직업선수로 까지 이어지는 인연을 함께 했다. 그 성장하는 과정의 희로애락에서 애경은 늘 어른이었고 이진이는 사춘기 문제아였다.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던 이진이에게 때로는 따스한 품으로 때로는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며, 죽음에 대한 습관적인 도피를 꿈꿨던 철없는 친구를 위로해 주었던 애경이가 먼저 죽음을 맞이하였다.

정작 이진이는 입버릇처럼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여파가 발생하는지 제대로 고민해 보고 설쳤던 걸까,

이렇듯 죽은 자와의 경계가 명확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친구에게 철없이 때를 쓰듯 했던 몹쓸 짓을 뒤늦게 통곡으로 후회하다니, 이진이는 끝까지 부족한 친구였다.


나지막한 산자락 양지바른 곳 햇살이 미리 따스하게 애경이 잠자리를 데워 놓았다. 1월 신부를 눈부시게 비춰주었던 햇살은, 12월 어미가 영혼 한 안식에 들어가는 날에도 따스한 햇살로 비춰줬다.


‘ 친구야,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온다고 고생했다. 이제 따스한 햇살 좋은 자리에서 편히 쉬거라. 우린 또 만나자. 안녕… ’



내 인생, 더 이상의 전개가 없을 줄이야

탁구 외에 시작한 또 다른 세계에서 상상조차 못 했던 결말이 이렇게 갑작스레 닥칠 줄이야.

난 그랬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집중을 했었다. 그다음... 지금 이건 너무 먼 훗날의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내 부모를 먼저 보내고, 내 자식이 어른이 되어 그들의 손자를 품에 안아보고 난 후의 생각해도 늦지 않을 만큼 아주 먼 훗날의 일어날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었다.


저곳에서 영혼이 주어진다면 내 아기들을 비추는 영혼의 별이 되고 싶다. 별빛에 온기를 담아 내 아들을 안아주고 싶다.


이생에 남겨진 미련과 나의 황망한 운명을 원망하느라 어떻게 죽음과 동행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떠나야 한다. 나만 놓쳤던 죽음의 대비였던가.


과연 그대들은 죽음을 준비한 적이 있었던가?


. ㅡ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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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