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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Sep 13. 2023

언더독: 토미

영화 '덩케르크' (2017)

#궁지에 몰린 언더독


1940년 세계 2차 대전, 덩케르크 해안 도심지를 죽어라 뛰는 앳된 청년 토미.

군대가 좋아서는 아니고 전쟁이 터져 억지로 입대한 그는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서 총알을 피해 앞만 보고 내달리고 있다.



그가 소속된 영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은 독일 나치에게 연일 신나게 얻어터지고 궁지에 몰렸다.

일단 총을 들고 하는 싸움에서 진 그들은 언더독 조차도 못 되는 패잔병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아직 한 가지 미션이 더 남았다 - 그건 바로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것. 하지만 해변에 무기력하게 앉아서 오지 않는 배들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마지막 남은 싸움에도 승산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엄마 보고 싶어요.



#아수라장


오늘의 주인공 토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두 친구를 만난다.


첫 번째로 깁슨, 덩케르크 해변에 영국군의 시신을 수습해 주던 애다.

대충 도와주고 함께 잔교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 텔레파시가 통했다 - 해변에 뒹구는 부상병을 함께 들고 가면 줄 설 필요 없이 프리패스로 배에 태워주겠지! 이 순간부터 둘은 절친이 됐다.



애석하게도 배 입구에서 부상병만을 태우는 걸 허락한 장교에 컷 당하는 토미와 깁슨.

둘은 또 텔레파시가 통해 다시 줄 서는 것 대신 사다리 밑으로 기어들어가 배에 몰래 탈 궁리를 한다.


독일 나치는 구석에 몰아넣은 언더독들에게 폭탄 세례를 선사한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두 번째 친구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과묵한 깁슨과 달리 종알종알 말이 많은 애다.


언더독 3인방은 집에 돌아가고자 미친 듯이 헤엄쳐 꽤 안전해 보이는 배에 탔다, 휴.

오랜만에 즐기는 토스트와 차 고향의 맛이다, 이걸 먹으니 엄마가 해주는 진짜 집밥이 더 생각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언더독 스토리는 밋밋해진다 - 독일 나치는 어뢰를 한방 쏴준다. 침몰하는 배를 겨우 탈출해서 눈을 떠보니 다시 덩케르크 해안이다. 지옥 같은 현실.


야 우리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하지?


세명은 마지막으로 해변에 버려져있는 배를 타고 귀국을 시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 깁슨은 말없는 과묵한 애가 아니었다, 영어를 못해서 입을 다물어야만 했던 프랑스 군이었다. 얼마나 집에 가고 싶으면 남의 나라 군복을 훔쳐 입었을까.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눈이 뒤집어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배에서 내리란다 - 전쟁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이쯤 되니 적군이나 아군이나 그냥 다 전쟁이 낳은 피해자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바닥에 구멍이 나 가라앉고 토미가 만난 첫 번째 친구는 애석하게도 생을 마감한다.


저런 이기적인 놈이라고 미워할 틈이 없다. 무사귀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미친 듯이 수영을 하다가 그들을 도와주러 온 영국 개인 어선을 만나게 되었고 구조되어 해협을 건넌다.


#사실 제일 두려웠던 것


영국에 무사히 도착해서 기차를 탔는데도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토미를 포함한 모든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전쟁에서 죽는 것만큼 두려워했던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목숨 바쳐 싸울 때 자기 한 몸만 건사해 비겁하게 도망쳐 온 사람들이라는 비난이다.


잔뜩 쫄아있는 그들에게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담요를 나눠주자 알렉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살아서 돌아온 것뿐인데 수고했다니요?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거면 충분해

뭔가 멍하다, 아직 반신반의한다. 저 노인은 거짓말을 하는 걸 거야 고향에 가면 정말 큰 비난이 쏟아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다가 둘은 기차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든다.


눈을 떠보니 한 기차역에 들어서는 중이었고 어떤 남자가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드려 댄다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지만 그 남자를 비롯한 역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욕대신 환호와 맥주 두병을 건넨다.


아, 우리가 살아 돌아온 것이 잘못이 아니구나, 그걸 느낀 순간 전쟁터에서부터 팽팽하게 지속되어 오던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진다. 마음속에 째깍째깍 돌아가던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이 없어졌달까.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총알받이로 내몰렸던 토미는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이젠 그는 더 이상 적에게 쫓기는 언더독이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다.


전쟁에서는 탑독 언더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살아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 이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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