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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Nov 22. 2023

아웃사이더: 재훈

영화 '싱글라이더' (2017)

#자발적 기러기 아빠


영화의 시작에서 그는 분명 인사이더였다.

증권회사의 잘 나가는 지점장이었으며, 반듯한 가정도 이룬 그런 사람.

인생의 고점에서 그는 '영어를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임금차이가 확연하다'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시차가 거의 없는 호주로 보냈다.



역시 사람일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 갑자기 큰 시련이 찾아왔다.


부실채권 사건이 터졌고 모든 것을 잃었다.

재훈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다, 이럴 때 가족이라도 주위에 있으면 좋으련만 자발적으로 기러기 아빠가 된 그의 곁에는 독한 양주와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뿐이다 - 순식간에 아웃사이더가 된 그.


깊은 밤,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다.

술과 약에 취해 비행기표를 즉흥적으로 끊고 출근하는 복장 그대로 호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는 살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은 나 없이 더 행복하다


호주에 도착했다.

그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의 주소를 낭만 있게 손등에 적어서 왔다 - 가장이 간다.


사실 그는 한국에서부터 살짝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아내에게 언제 한국에 오냐고 물어볼 때마다 자꾸 일이 있어 늦어질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닌가.

무슨 꿍꿍이 일까.


아무튼 그는 가족들의 집에 도착했다.

뭔가 앞에 짠 하고 나타나는 건 뻘쭘할 것 같아 일단 주위를 배회하는 재훈.

그러면서 그들이 이곳에서 나 없이 단단하고 아늑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 수진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결혼과 동시에 강제로 직업이 재훈의 아내 그리고 아들 진우의 어머니로 바뀌어 버린 것일 뿐.

호주에 온 이후 그녀는 새로운 세상이 주는 자유로움에 젖어 가슴속 깊이 묻고 살던 꿈을 꺼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을 뽑는 오디션에 바로 참가해 버렸다.

여기까지는 뭐 당연히 그녀에게 좋은 일이다, 진정 불쾌한 건 옆집에 사는 호주 부녀의 존재다.


크리스라는 이름의 호주 놈.

아내가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어 딸과 둘이 사는데 수진과 내 새끼 진우와 함께 마치 4인가족처럼 지내는 게 너무 꼴 보기가 싫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보냈던 어린 아들 진우는 영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그냥 호주인이 되어버렸고, 마치 크리스를 아버지로 생각하는 것 만 같다.


분명 둘 사이에는 무언가가 있다.

내가 한국에서 고객들에게 멱살 잡혀가면서 힘든 돈벌이를 할 때 니들이 어떻게 여기서 이럴 수가 있나.

나는 그냥 ATM이었나 하는 엄청난 배신감.


#마무리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 판도라의 상자인걸 알면서도 미친 듯이 열고 싶은 심리.

재훈은 굳이 집 앞에서 보초를 서다가 아내와 크리스가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까지 목격한다.


충격 그 자체 -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지만 내 분이 풀리겠다 하고 들어간 집.


그는 수진이 작성하고 있던 영주권 신청서를 본다, 자신과 함께 호주로 와서 함께 살겠다는 그녀의 계획 말이다. 그리고 아이처럼 울음이 터져버렸다 - 한국에서부터 있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싹 다 흘러내렸다.


가장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인 가족들의 안녕을 빌어주고 집을 나선다.


다음 날 그는 뭔가를 깨달았다.

왜 호주에서는 몇 명만 나를 보고 이야기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나를 유령처럼 지나칠까.

그리고 생각한다 - 나는 사실 한국에서 술김에 비행기를 예약할 때 이미 죽은 게 아니었을까?

확인해 봐야지, 호주에 와서 제일 의지한 친구인 워홀러 진아를 데리고 홀린 듯이 어디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발견한 진아의 시체 - 아 우리는 이미 죽었구나, 망자끼리만 서로 보고 대화할 수 있었던 거네.


재훈은 진아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무도 모르게 여기 혼자 왔던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무관심 속에 죽어간 오늘의 아웃사이더는 그의 가족만큼은 크리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살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후련하게 떠났다, 호주의 바닷바람을 타고.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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