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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까닭

by 동남아 사랑꾼


어느 신문 기사에서 따온 제목이다. 입춘을 지난 봄이 오락가락 하지만 봄이 오는 소리가 여주 논두렁에서, 집 뒷산에서 그리고 집 앞마당에서 들린다.


따스한 봄볕이 큰 창문 유리창을 비집고 8일 들어온다. 그 빛 때문인지 우리 히꼬는 벌렁 뒤집어 누워 은밀한 곳까지 나 몰라라 하고 보여준다. 애기 때 데려온 그가 이제 엄마 될 준비까지 마쳤는지 젖꼭지가 8개가 선명하게 보이고 겨우내 못한 햇볕 쐬기 선탠을 한다.


작년에 심어 놓은 앞마당 복숭아(도화)는 싹을 틔울 조짐은 없지만 기다림까지 버리진 않고 있다. 내 나름의 봄맞이로 며칠 전 사서 읽고 있는 나태주 산문집 '꽃이 사람이다'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즈음까지 각종 꽃이야기다. 80대 시인이 봄꽃을 보고 감사하고 고맙게 느끼며 봄을 기다리고 보내는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어쩜 노인이 되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다. 그는 복숭아꽃을 명자꽃과 더불어 너무나 아름다워 옛 어른들이 사람들을 미혹한다 하여 집마당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그게 와전이 되어 그런지 작년 복숭아꽃을 살 때 화원 주인이 복숭아꽃은 이쁜데 집에 두면 액이 찾아온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 것이 새삼 생각난다. 나도 집사람도 복숭아꽃이 이쁜지는 멕시코에서 살 때 집에 복숭아 몇 그루를 심고 이제나 저제나 꽃피고 열매 달리길 보았기 때문에 안다. 복숭아의 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흰색과 분홍색이 겹쳐 미혹할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그렇듯이 그 순간은 짧다. 어느 해는 바쁘다가 보면 꽃은 못 보고 복숭아가 달린 것만 볼 때도 있었다.


아직 봄은 오락 가락 하겠지만 어김없이 봄은 오고 복숭아꽃도 필 것이다. 거리의 수양나무 연두색 가지가 봄바람에 춤추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게다.


봄소식은 늘 우리 곁에 왔다 갔다 했지만 세상 사는데 바쁜 우리는 지나치며 살아오진 않았을까. '봄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것은 때늦은 후회를 의미하지 않을까. 내가 살며 지키려고 했던 구절인 '금, 여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지내면 지금 인생과 자연의 봄을 느끼고 보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벌렁 누워 있던 히꼬가 양초를 씹어 집사람한테 혼나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 잔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봄 오는 소식을 기다린다.(1000회 이상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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