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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Apr 14. 2024

4월 봄이거늘

히꼬가 보는 봄


T.S. 엘리엇은 그의 장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비평가에 따라 엇갈리는 개인적 소중한 인연의 상실감과 서구 문명의 몰락을 비유해 황무지라는 시를 썼다.


백사실 계곡 노목의 연두색 잎사이로 반이는 4월 봄빛이 나무 그늘 사이로 내리 비춘다. 그 눈부신 광경을 넋없이 바라보고  있는 순간, 포근한 봄바람에 실려 벚꽃비가 내린다. 벚꽃 엔딩을 알린다. 작년 이맘 때는 이미 막바지 벚꽃 엔딩을 아쉬워했었다. 그러나 기후변화 탓인지 늦게 피기 시작한 벚꽃이 늦게까지 버티고 있다. 하지만  과거 같았으면 순차적으로 왔을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목련, 철쭉, 복사꽃이 올해는 이런 자연 섭리를 무시하고 벚꽃과 같이 찾아왔다.  그나마 벚꽃 엔딩이 덜 처연한 까닭이다.


백사실 계곡을 오르다 보면 라일락 향기가 코를 찌른다. 4월의 꽃이 라일락이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언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라고 했다.


 라일락의 보라색은 세련된 사람에게만 어울리지만 그 향기 또한 남다르다. 왠지 라일락 하면 멕시코 있을 때 이맘때쯤 흐드러지게 피던 하카란다가 생각난다. 라일락의 보라색이지만 라일락의 보라색만큼 진한 향기는 품고 있지 않다. 재작년 이때 나는 서울에 가면 하카란다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적었다. 정작 서울에 오니 보랏빛 라일락 때문에 하카란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난 4월이 좋다. 각종 꽃들도 꽃이지만, 오래된 나무 가지에 초록색 연두색 잎들이 햇빛에 반사되는 그 아름다은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 온 히꼬는 엘리엇도 나와도 다른 그저 그런 4월 봄인 듯하다.  


여주서 서울로 봄나들이 나온 히꼬는 백사실 계곡을 오르는 내내 코를 땅에 데고 킁킁대며 자기가 내지른, 아니면 다른 친구들이 자기 영역을 표시로 남겨둔 지린내 날 오줌 냄새에 여념이 없다. 이성에 대한 욕구 때문인지.  고개 들어 보면 보이는 벚꽃 엔딩이며 반짝이는 연두색 잎을 쳐다보지 않는다. 다 공짜인데. 예술도 보이는 만큼 본다고 했다. 다 공짜 자연이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저기서 고요함을 깨는 새소리가 들린다. 히꼬 사냥개 DNA 때문인지, 우리 인간처럼 세상 소음이 좋아서인지 연신 귀를 쫑긋 세운다.


백사실 계곡 4월은 볼 것, 들을 것, 냄새 맡을 것이 참 많다. 그런데 히꼬는 백사실 계곡 바깥의 세상이 좋은 모양이다. 히꼬를 우리의 자화상에 비유하면 너무나 서글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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