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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May 04. 2024

멈추면 보이는 소소한 일상

5월의 풍경


5월이다. 하루가 다르게 짙은 녹음이 내 주위를 덮고 있다. 황석영 소설 '철도원 삼대'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잘 묘사해 준다.


"마른 나무가지에 움튼 순에서 연두 어린 떡잎으로  저라나 쑥쑥 커진 잎사귀들은 녹색이 짙어지고 윤이 나면서 햇빛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여주댁 히꼬가 서울집 나들이로 온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아마 최소 5번은  오줌이며 똥을 누이러 집 단지 내 오래된 등나무 아래로 간다.


히꼬가 볼일을 보는 사이, 오월의 햇빛이 한 줄 기도 들어오지 못하는 빽한 등나무 아래 의자에서 앉아 이 순간을 보고 느끼고 냄새 맛는다. 오래 이 집에 살았지만 등나무의 보라색 꽃이 아카시아 꽃향기 냄새가 난다는 것을 몰랐다. 멕시코의 하카란다를 생각나게 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그 향기와 눈호강을 하는데 히꼬가 좋은 똥을 싼다. 똥을 싼 히꼬는 기분이 좋은지 집에 들어오자 마자 벌렁 뒤집 희색의 배를 드러놓으며 지랄 발광을 한다. 배설의 기본욕구가 충족된 기쁨일까.


배설 봉지를 집 뒤쪽 베란다에 놓는 순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네 암자의 부처님 오신 날 오색의 연등이 어린 시절 운동회 때 운동장을 수놓은 풍경처럼, 베트남 고도 호이안의 연등처럼 이쁘게 바람에 흔들린다. 옆에서 뭔가 하는 마누라 왈,  자기는 이때가 제일 좋다고, 특히 밤에 연등에 불이 들어온 모습을 보면 공짜치고 너무 좋다고 한다. 그래서 고기 냄새가 청문을 타고 암자까지 번지는 게 괜히 미안하다고 하며 고기는 밖에서 먹자고까지 한다.


부처님 오신 날, 베스트 드레스라고 해야 한복이지만, 깨끗이 잘 차려입고 단골 절에 가서 연등을 달며, 자식들 잘 되게 해 달라고 축원하던 어머니 모습도 아른거린다.  이젠 떠나버려 효도할 수 없지만 어머니의 축원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나 하는 생각도 든다.


히꼬 운동시키라는 마누라 등살에 목줄을 채워 동네를 걷다 보면 두세 번은 히꼬 또래의 개들을 만난다. 서로 통성명도 하기 전에 벌써 둘이는 뽀뽀도 하고, 서로 냄새도 맛고 한다. 뭔지 몰라도 지네끼리는 좋은 모양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 가게 앞 나이 든 할머니가 쓰레받기에 담았던 뭔가를 버린다. 자세히 보니 나방인지 휙 하고 날아간다. 그 미물을 그냥 죽일 뻔도 한데 방생한다. 어쩜 그 할머니 눈에 그 나방이 얼마 살지도 못하는데 애처로웠는지, 자신의 다가오는 이생의 작별의 아쉬움에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그분의 나방 방생을 바라보는 나 또한 숙연해진다.


잠시 멈추면 보이는 5월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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