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폭우로 인한 해변 접근 자제 내용의 문자 멧시지가 있다.
거실에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다 바람과 차양이 맞부디 치는 소리로 보아 밖엔 바람과 비가 함께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여느 때처럼 동백섬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우산과 양산의 양수 겹장용 조그마한 우산을 펼쳐 들고 종종걸음으로 아파트를 나간다. 생각과는 달리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굵기도 작다.그런데 점점 우산 위로 치는 소리가 크지고, 바지 끝단이 젖기 시작한다.
동백섬에 들어서는 울창한 나무 때문에 굵은 비가 양쪽 빼곡한 동백나무 숲에선 빗소리와 부딪히는 소리가 애법 크게 들린다.
동백섬 산책로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반쯤 돌다 보면, 왼쪽으로 최치원 동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오른쪽 바닷 쪽 방향엔 APEC 누리마루가 떡하니 자라 잡고 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멀리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신라시대의 석학인 최치원이 음각했다는 '해운대'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오랜 세월 탓에 희미해진 글자도 있지만 1500년 세월의 풍파치고는 그나마 잘 보존되어 있다. 최치원은 조정의 시기를 뒤로
하고 가야산으로 낙향하던 차에 해운대를 들려 본 절경에 취해 해운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 비 오는 날 동백섬에 해운대 해변과 해변을 끼고 있는 고층 빌딩이 운무로 싸여 한여름 납양 특집에 나오는 숲 속의 귀신 자태처럼 보인다. 최치원이 해운대로 명명한 이유를 알 듯했다.
운무에 싸여 해운대라고 했겠지만, 잘난 탓에 한 몸에 조정의 시기를 받아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의 마음을 해운대 운무가 어머니의 품처럼 감싸 안아 큰 위로를 받아 해운대라고 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위대함은 이처럼 예날에도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지금 그 어디서 자기 탓 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누구든 자연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해운대의 검푸른 바다 위로 굵은 비는 계속 떨어지고, 내 바지의 반은 이미 젖었다. 파리바게트 카페 라떼와 단팥빵으로 아침을 하며 이 글을 독수리 타법으로 찍는 동안 어느새 바지는 말라있다.
아무리 비가 오고 궂은 날도 인생도 찰나의 순간이고, 또 다 지나간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끼는 후배에게 이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