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달랑 남겨 놓고 있다.
모두의 가슴을 쓰려 내린 12.3 비상계엄이 우리 모두의 일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나의 일상 또한 그랬다.
그날도 평상처럼 일찍 잠이 들었다. 중간에 깨 어쩌다 뉴스를 쳐보니 웬 가짜뉴스가 이리 많은지 의아하다가 계속 검색해 보니 진짜 뉴스였다. 그때부터 다시 잠을 못 이루고 당초 계획한 서울 공식 행사를 취소하고 새벽 부산행 열차를 탔다. 얼마나 타고 가는데 집사람이 계엄해제되었다 한다.
일터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있을지 싶어 다들 출근 전 직장에 도착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부산 유엔기념공원(옛널지명 유엔묘지, 미군소속 카튜사 포함시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튀르키예, 프랑스 등) 여타14개국 2330명 안장)에 남겨둔 해외 유족들로부터도 안부 메일이 온다고 한다. 그저 당연한 일상들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해운대 앞바다의 운무가 짙게 쌓여 늘 뜨던 아침 태양도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밑에 조기 운동객들이 서울에 비하면 따뜻한 영상 기온에도 불구하고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장갑마저 끼며 옷도 두툼해 보인다. 오늘은 바다 바람도 유난히 더 세게 느껴진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서울, 여의도며 광화문이며 다들 소란스럽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에선 계엄, 탄핵 단어가 들린다. 서울 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가는 심란한 마음은 밀양~부산 기차의 캄캄한 긴 터널 속의 어둠에 갇혀있다. 2002년 이라크전 당시 미 국방장관 럼스펄드가 '세상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unknwon unknwons)'이 있다는 그런 상황이다.
공직 생활 35년 동안 포함 내 인생에서 2번 계엄을 겪었고 대통령 탄핵은 3번을 경험했다. 대통령 탄핵 2번은 공직 중이고, 현재 진행형의 1번은 은퇴 후다.
첫 번째 계엄은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발표된 부분 계엄이 1980.5.17 전국으로 확산된 계엄이다. 당시 대학 1년생이었던 나는 교문 정문 앞 탱크를 보았고, 그날이 휴교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 광주에선 5.18 광주사태가 났다. 45년 만에 2024.12.3 두 번째 계엄을 경험했다.
첫 번째 대통령 탄핵은 2004.10월 2개월 정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시 외교부 공보과장이었고,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은 2016.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다. 3개월 정도였지만 아세안 대사로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은퇴 후 국제기구로 와서 민간인으로 현재 진행형이지만 세 번째 탄핵이자 내 인생의 마지막이어야 할 탄핵 정국을 목도하고 있다. 이 불확실성이 한 치 앞도 분간 못하게 하고 있다.
해운대 안개도 걷히고, 이 답답한 긴 터널도 빛을 이길 수 없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희망을 품고 해운대 12월을 보낸다.